며칠 전 K5 차량 세차 주문이 들어왔다. K5는 자주 세차 의뢰가 들어오는 차량이다. 그만큼 많이 팔리고, 많이들 운행하는 차량이다. 출시된 지 오래되어 노후한 차량도 꽤 보인다. 아침 8시 반에 아파트 외부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내고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은 차량에서 몇 가지 짐을 빼더니 "트렁크 짐도 빼드려야 하나요"라고 물어 오신다. 이런 질문은 얼마 전부터 예약 고객에게 사전에 발송한 안내문 때문이다. 그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내부, 외부 모두 스팀으로 세차합니다.
극심한 오염의 경우 추가 요금이 발생합니다.
트렁크에 짐이 가득 차 있으면 짐을 빼지 않고 시공합니다.
유아용 카시트는 고객님께서 분리해 주셔야 합니다.
[유아용 카시트는 고객이 분리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파손의 위험 때문이다. 유아용 카시트는 뒷좌석에 결착되어 있는데, 그 종류도 다양하고 노후된 것도 많아서 분리 시 파손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분리 후 다시 결착했는데 부실하게 부착될 경우, 불의의 사고 시 책임소재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안내 문구를 발송하기 전에는 카시트도 당연히 분리, 결착해야 된다고 우기는 고객도 있고, 카시트 분리를 해주지 않으면 취소하겠다는 고객도 있었다. 하지만 중형 승용 차량의 경우 내부세차 비용은 3만 원 정도이고, 그 3만 원에 유아용 카시트의 분리, 결착 위험 부담까지 안을 수는 없다.
[트렁크에 짐이 가득 차 있으면 짐을 빼지 않고 시공한다]라는 안내는 상당히 많은 고객들이 트렁크에 짐을 가득 실은 채로 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고객 스스로 트렁크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짐이 많아도, 꽉 차있어도 모른 척하신다. 세차를 주문해서 갔는데 트렁크 짐 정리 및 분리수거까지 해야 되는 경우다.
잔짐들이 큰 가방에 분리 수납되어 꽉 차 있으면 다행이지만, 개별 물건이 질서 없이 트렁크에 꽉 차 있으면 정말 난감하다. 일단 버릴 물건인지 아닌지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수납처리 해야 한다. 이쯤 되면 세차를 하러 온 건지 정리수납을 하러 온 건지 헷갈린다. 또한 그렇게 다양한 물건이 꽉 찬 경우, 추후에 고객이 어떤 물건이 안 보인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일일이 기억을 하지 못하니 난감하다.
[극심한 오염의 경우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라는 문구는 이쪽 업계를 잘 모르시고 주문하시는 고객 때문에 보내는 안내문이다. 스팀으로 세차를 한다고 하니 이게 무슨 만능 아이템으로 생각하시는 고객이 있다. 스팀으로 하면 내부에 찌든 담배 냄새도, 바닥의 토사도, 베이지색 시트에 묻은 얼룩도 해결되리라 생각을 하신다.
또한 차량의 바닥에 갖가지 쓰레기를 버려두고 모른 척 세차를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쓰레기를 청소하러 가는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문제인 것이다. 마치 한 달 전부터 "세차 업자 부를 거니까 마음껏 어지럽혀도 돼" 하고 생각한 것처럼 차를 방치하고 부르는 경우다.
[내부, 외부 스팀으로 세차합니다]라는 안내문은 간혹 스팀으로 하지 않고 타월로 대충 닦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고객들 때문에 보내는 문구다. 이런 의심을 하는 것은 스팀으로 세차를 한다고 해놓고 워터리스(물을 쓰지 않고 약-중성세제-을 사용해서 하는 세차)로 하는 비양심적인 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의 K5고객은 스팀으로 시공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하셨다. 본인은 믿는데 남편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순간 연예인들이 나와서 진행하는 토크쇼에서 황당한 사례에 대하여 연예인들이 본인 경험은 아니고, 친구의 친구가 겪은 일이라며 사연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뭐 이런 멘트는 쿠션 언어라고 해야 할까? 책임의 회피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신뢰가 무너진 사회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세차를 하며 중간중간 영상을 찍어서 보내드렸다.
출장 세차는 고객이 옆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드물지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며 계속 옆에서 지켜보시는 분이 있기도 했었다. 출장스팀세차 창업 초기에는 그렇게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제발 옆에서 지켜보면 좋겠다. 내가 고객님의 차를 어떻게 세차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그 과정을 본다면 세차 후 딴 말씀은 안 하실 텐데'
하고 생각한다.
처음엔 잘 몰라서 열심히만 했고, 시간이 지나고 스킬이 쌓이면서 요령껏 했고, 더 시간이 지나서 스킬과 요령이 쌓인 지금의 나는,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고 한다. 머리는 최선을 다해서 빈틈없이 세차하라고 하지만 몸은 편한 길을 찾는다. 물론 세차를 업으로 하는데 내차처럼 시간 한정 없이 세차를 할 수는 없다.
이 일을 1년도 못하고 그만두는 점장들에게 그런 경우가 많다. 세차하는 게 좋아서 이일을 택했다는 그런 분들은 초기에 고객의 차를 자기 차처럼 정말 정성스럽게 세차를 한다.
세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하는 세차가 있고, 차량 내부를 정밀하게 청소하는 클리닝이 있다. 클리닝도 의자를 탈거하거나, 그대로 두고 하는 종류가 있다. 물론 요금의 차이는 크다. 일반 세차가 5만 원이라면 클리닝은 25만 원, 의자를 분리하고 하면 30만 원이 넘어간다.
얼마 못하고 이 일을 접는 점장들은 초기에 정말 자기 차처럼 열심히 하다가 나가떨어진 경우가 많다. 일반 세차를 디테일링처럼 정밀하게 하는 것이다. 고객의 만족도는 높을 테지만 그렇게 하면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일반 세차는 한대당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정밀 클리닝은 한대당 4시간이 소요된다. 일반 세차만 한다면, 이동 시간까지 고려해서 하루에 5대 정도가 최대치다.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하루에 5대가 넘어가면 몸에 무리가 온다. 이렇게 무리해서 일을 하면 꾸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5대를 노심초사하면서 정성스럽게 디테일링 처럼 한다면? 물론 고객이야 만족하고 점장 본인도 만족하겠지만, 몸과 매출액은 매우 매우 불만족하다고 강력히 항의한다. 몸과 돈이 불만족이니 오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답은 고객 만족의 수준을 찾는 것이다. 주문한 메뉴에 따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정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고객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면 왜 그럴 수 없는지 설명해야 한다.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메뉴는 여기까지 입니다라고... 이것의 접점을 찾지 못하면 오래 하려야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