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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우정 May 13. 2024

됐고, 보험 처리해 주세요

기본이 루틴이 되게

“사장님! 보내신 사진을 보니 뒷부분 도색이 까져 있던데, 왜 그런 거죠?”

“아, 고객님 잠깐만요.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

“고객님 전후 비교사진으로 볼 때 달라진 것은 확인이 됩니다만, 좀 더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 됐고요. 보상이나 보험 처리해 주세요”

“고객님 말씀은 일단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다른 차 세차 중이라 마치고 나서 좀 더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무슨 확인이요? 직접 보내신 사진에 명백하게 증거가 있는데? 됐고, 보상접수 해주세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아침 9시에 시공한 차주 남편과 통화한 내용이다. 지금은 오후 3시, 다른 차 세차를 하고 있었다. 고객은 보상 접수를 요구하고 있다. 한창 피치를 올려서 일하는 와중에 전화가 와서 당황스럽게 응대를 했다. 내가 보낸 비포애프터 사진을 보고 고객도 당황하여 전화를 한듯하다. 격앙된 목소리로 따지듯 말을 하니 일단 내 잘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 천천히 오늘 아침 9시를 생각해 본다. 10년이 넘게 운행한 골프라는 흰색 차량이었다. 내가 보낸 사진을 보니 비포사진에는 없던 스크래치자국이 애프터 사진에는 있다. 흰색의 도장면이 벗겨져 은색이 보인다. 고객의 말대로 세차 전후 사진만 보면 도장 면은 벗겨져 있었다. 그리고 범인은 바로 나였다.     

만약 세차를 하며 내가 도장 면을 벗겨냈다면? 그 사실을 내가 몰랐을 리 없고, 고객에게 알리고 스스로 보상접수를 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초짜지만, 세차로 이렇게 도장 면이 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초짜이기 때문에 겁을 집어먹고 내가 한 일처럼 느껴진다.      


“기왕에 도장면이 살짝 까져 있었는데 내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을까?”

“내가 범인이라면 증거사진을 왜? 고객에게 보냈지? 그것도 당당하게 이것 보라는 듯이?”     


세차 주문이 들어와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면 고객에게 전화를 한다. 이후 고객의 행동은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직접 내려와 차키를 전달해 준다. 둘째는 차키는 차 안에 있으니 진행하시면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원격으로 열어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비대면 서비스인 것이다. 이 고객은 직접 내려와 차키를 전달해 주었던 첫 번째에 해당한다. 주부고객이었고, 차량은 10년이 넘어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다. 고객은 차가 오래돼서 좀 더럽다고 한다. 차는 오래돼서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관리를 하지 않으면 빨리 낡아진다고 말씀드리고 시공을 시작한다.      


세차의 시작은 사진이다. 세차 전 차량 외부의 전면, 측면, 후면, 지붕을 찍는다. 이후 특이한 곳을 또 찍는다. 특이한 곳이란 스크레치가 명확한 곳이나 특별한 파임이 있는 곳이다. 자기 차지만 고객들은 대개 자기 차량의 상태를 잘 모른다. 잘 모르는 상태로 세차를 하고 나면 보이지 않던 스크레치나 파임이 더 도드라져 보이게 된다. 이 경우 고객은 의심을 하게 되므로 비포 사진을 최대한 찍어야 한다.      


세차 후 이 고객에게 비포애프터 사진을 보냈다. 세차를 마친 시간은 10시 반이었고, 전화가 와서 항의한 시간은 오후 3시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내가 봤던 고객이 아니라 고객의 남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천천히 생각해 본다. 세차 전 비포 사진을 찍었었다. 이후 도장 면이 까진 부분도 찍었었다. 세차 후 애프터 사진도 동일 부분을 찍었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드디어 떠올랐다. 세차 후에도 동일 부위를 찍고, 차량 후면부를 찍을 때 차량의 이름 즉, GOLF라는 이름이 붙은 부위를 확대해서 찍었었다. 확대해서 찍은 이유는 비포사진에서 그 부위에 묶은 때가 들어차서 전후가 명확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사면의 사진을 찍은 이후 비포사진에서는 GOLF라는 상표를 1의 비율로 글자만 찍었었고, 애프터 사진에서는 그 상표를 확대하면서 가까이 찍었다. 가까이 찍었지만 상표 아랫부분까지 포함되었고 비포사진에는 없는 도장면이 까진 부분이 포함되었다. 그 사진을 찍을 때는 너무 명확한 도장면의 까짐이라 고객은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던듯하다.     


이제 일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알게 됐다. 고객에게 사진을 보낼 때 일반적인 사면의 사진을 보내지 않고, “제가 이렇게 깨끗하게 작업했습니다”라고 자랑하듯이 보낸 사진 중에 비포는 GOLF 상표 아래는 찍히지 않았고(그러니 도장면의 까진 부분은 보이지 않았고), 애프터 사진은  클로즈업하며 아래 부분까지(까진 부분까지) 찍어서 보낸 것이었다. 그러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니 그냥 슬쩍만 봐도 없던 스크레치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말을 믿어줄까? 사진을 확대해서 찍었다고 하면 믿어줄까? 아까 전화상의 목소리는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는데...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변명처럼 핑계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잘못했다면 변상을 하는 것이 맞지만, 내 잘못이 아닌 것이 명확하다. 그 차의 상표 아래는 원래 까져 있었고, 차 상태를 모르는 부인은 사진을 보고 까진 부분을 발견했을 테고, 부인이 타는 차의 상태를 모르는 남편이 사진만 보면 범인은 바로 나였고, 그렇게 나는 범인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휴대폰의 사진앨범을 뒤진다. 비포 사진을 찍을 때 일정 거리에서 전후좌우측면은 무조건 찍는다. 이 일반적인 사진, 즉 특정부위를 찍은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방의 사진에는 그 상표 아래의 까진 부분이 보일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의심이 든다. 


'사면의 기본적인 사진을 정말 찍었을까?'

'혹시 빼먹고 안 찍은 건 아닐까?'


 드디어 그 사진을 찾았다. 보통은 이런 사진의 비포애프터를 고객에게 보내지만, 가끔은 특정 부위를 고객에게 보내기도 한다. 이유는 극명한 비포애프터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증거를 찾았다. 이 증거사진은 내가 하는 백 마디의 설명보다 낫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 봤자 고객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증거 사진의 속성에 들어가 보면 세차 전의 시간까지 지문처럼 남아있다. 후측면 사진의 비포와 애프터를 고객에게 전송했다.      


약 3분 후...

“사장님 죄송했습니다. 제가 우리 집 차의 상태도 몰랐네요. 보상이니 뭐니 하는 거 모두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고객님! 그러실 수 있습니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낸 제 잘못입니다.”     


루틴처럼 지켜온 전후사진 찍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귀찮아서 사진을 찍지 않는 점장들도 많다. 나도 바쁘면 시진 찍으며 ‘아 찍지 말까? 한두 부위만 찍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직하게 찍어온 사진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귀찮다고 찍지 않고 넘어갔다면 얼마나 많은 말이 필요했고, 이해를 시킨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서로 찜찜했을까? 이래서 기본을 지켜야 한다. 기본이 루틴이 되도록 우직하게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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