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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서울에는 집집마다 썰매가 있어."

by 지니운랑 Feb 28. 2025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오늘은 눈이 왔다.


부산 출신인 나는 눈 오는 날을 참 좋아한다.

부산에 내리는 눈은 대분분이 금싸라기 눈이다.

쌓이는 법이 없이 하늘에서 내려 공기 중에 휘날렸다가 바닥에 닿는 순간 녹아 없어진다.

더욱이 그마저도 잘 오지도 않는다.


결혼을 하고 신혼으로 살았던 경기도 군포 산본.

그해 겨울 그동안 내가 태어나서 살면서 본 눈보다 더 많은 눈을 볼 수 있었다.

펑펑 내리던 눈도 처음 봤고

펑펑 내리던 눈이 순식간에 쌓이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엄마, 서울 아이들은 집집마다 다 썰매가 있어."

그 당시 내가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했던 말이다.


2005년 03월 05일 토요일

부산에 눈이 내렸다.

부산에서 이만큼의 눈을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그것도 3월 눈이라니...

그 당시 초등학교 컴퓨터교실에서 일을 하던 나는 다음날인 6일에 아이들을 인솔하여 컴퓨터 자격증 시험을 치러 가야만 했다. 익숙하지 않은 눈에 교통이 마비되어 그나마 평지 일부구간만 벌벌벌 거리며 운행하는 버스를 겨우 잡아타고 수십 명의 아이들을 시험장에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물론 시험을 포기한 아이들도 많았다. 아이들아수라장 속에서 고사장으로 들어갔고 결국에는 다음 주 일요일에도 컴퓨터 자격증 시험을 치게 해 준다는 뉴스가 자막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들 시험을 치는 동안 겨우 한숨 돌린 나는 시험장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눈을 굴리며 노는 동네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들떴다. 하지만 그 눈도 아이들이 시험을 치고 헤어진 오후가 되자 골목 석구석 응지를 제외하곤 다 녹아버려서 무척 아쉬웠다.


서울에 살게 되면서 이제는 매년 겨울에 눈을 본다.

그리고 우리 집에도 썰매가 생겼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눈만 오면 미친 듯이 나가 놀았다. 특히 첫째는 지금도 눈이 오면 우산을 펼치지 않는다. 을 맞으며 쌓인 눈 위를 큰 대자로 구르곤 한다.

나 역시도 아직까지 눈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 슬슬 눈이 내리고 난 다음날의 미끄러움을 걱정할 나이가 되었다. 눈길을 걷다 넘어져 다치면 뼈 붙는 걸 걱정할 나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단연컨대

머리에 4계절 내내 새하얗 눈이 쌓여있는 나이가 되어도 아마도 난

눈 내리는 날을 좋아할 것 같다.


어느 11월 강원도로 떠난 여행에서

어스름이 내린 , 지하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1층으로 올라오던 부산 촌놈들은 펑펑 내리는 눈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 눈이다. 눈이야~~"

좋아라 하는 우리들의 함성 소리에 놀라서 뛰쳐나오던 다른 숙소의 사람들의 모습에 덩달에 놀랍니다.

"어디? 어디에서 불났어?"

세상에 눈을 보고 좋아서 소리 지르는 사람들은 부산 촌놈들 뿐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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