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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보 Apr 26. 2024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산티아고

산티아고순례길 10일차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마음이 생길까. 기관사를 하다 그만두었다는 청년을 다시 만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말했다. 동영상 같은 걸 보면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막 울잖아요. 그게 다 너무 고생을 해서 우는 것 같아요. 저는 나이 사십 전에는 여기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요. 한 달 여행이면 더 좋은 곳이 많을 것 같아요. 마당의 탁자에서 과일을 나눠 먹고 이 청년과 헤어졌다. 우리 인생에서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날인 것 같아요. 부엔까미노, 행복하세요. 내가 말했다. 내일부터 이 청년은 나보다 계속 앞에서 걸을 예정이다.


   지금 내 몸에서 제일 고생을 하는 아이는 오른 새끼발가락이다. 힘없이 바닥에 깔려있다. 바닥에 깔려 칼처럼 납작해졌다. 왜 왼쪽 새끼발가락은 아무렇지 않지? 혹시 왼쪽이 오른쪽한테 자기 짐을 몰래 옮겨 놓은 거라면... 가여운 오른 새끼발가락. 꼭 나 같구나. 내가 너를 사랑해 줄게. 복숭아뼈 밑의 물집은 터졌다. 밴드를 갈다 물집이 째졌다. 잘 됐다. 이제 아물기만 하면 된다.


   오늘은 많이 걸었다. 5시 50분에 출발해서 1시 반에 도착했다. 약 28km 걸었다. 중간에 미국교포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했다. 나이가 육십 여덟인데 처음엔 오십 후반으로 보였다. 종아리도 탄탄하다. 암벽등반이나 등산을 한다고 하고 남편과 캠핑카를 타고 2년 미국여행을 했다고 한다. 한국사람들 참 불쌍해요. 돈하고 자식밖에 몰라요. 세상에 볼 게 얼마나 많은데.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가서 각자 인생 살도록 한다면, 아예 법으로 정해서 그게 일반화된다면, 모두가 예외 없이 스무 살부터 똑같이 빈손으로 출발한다면.

  

새벽길을 걷는 순례자들


동이 터 오고 멀리 산타도밍고市가 보인다

 

   60대 부부들이 꽤 많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종교적인 이유로 오는 사람도 있다. 중간에 한전에서 퇴직한 부산부부를 다시 만나 조금의 음식과 주스를 얻어먹었다. 사고 싶어서 그러니 누나가 한 번 사 준다 셈 치고 먹으라고 해서 고맙게 얻어먹었다. 아주머니가 참 부드러운 인상이다. 숙소에서는 처형과 함께 온 60대 부부 - 세계여행을 한다는 - 를 또 만났다.  내일 숙소예약을 못했는데 이 아저씨가 자기의 노하우로 예약해 주었다. 나는 보답으로 슈퍼에 가서 사 온 오렌지, 키위, 귤을 깎아 드렸다. 내일 아침으로 먹으려고 했던 거지만, 드렸다. 나도 불편을 감수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줄 때도 있어야지.

   한국청년들도 많은데, 남자 젊은이들에겐 말을 걸기가 어렵다. 어디서 왔냐 물으면 대부분이 자기 대답만 짧게 하고 대화를 잇지 않는다. 그런데 또 외국인과는 웃으며 대화를 잘한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좋은 가보다.

  


산타도밍고市의 노천 카페


오늘의 목적지, 벨로라도 입구


   지금은 새벽 5시 반. 마음이 느긋하다. 오늘은 조금만 걸을 예정이다. 8km. 천천히 가도 두 시간이면 간다. 비가 예보되어 있지만 천천히 가면 된다. 새끼발가락만 안 아프면 좋겠는데. 다 좋은 건 세상에 없으니까..

   환상적인 풍광, 이를테면 우거진 수풀이라든지, 기암절벽이라든지 그런 것은 없나 보다. 밀밭과 포도밭이 다인 듯.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마음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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