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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보 May 07. 2024

알베르게 현관에 가만히 앉은 고양이와 나

산티아고순례길 16일차

   성당을 개조해 만든 시설, 순례자들의 도네이션(기부)으로 운영되는 곳.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촛불을 밝혀 자원봉사자들이 섬기는 곳.  자원봉사자들이 순례자들의 발을 씻겨 주고, 발에 입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고, 산티아고까지 잘 도착하도록 기도를 해 준 후, 촛불 아래 소박한 저녁식사를 하는 곳. 이런 알베르게가 까미노에는 몇 개가 있다고 하는데, 나도 꼭 한 번은 묵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가 내 옆에 와서 앉습니다. 내게 할 말이 있는지, 나는 아무것도 줄 건 없는데. 나는 개나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 건 아니지만, 지금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볼까 싶네요. 해지는 알베르게 현관가만히 앉은 고양이와 나.



   티셔츠 하나를 분실했습니다. 빨랫줄에 두고 온 모양입니다. 반팔티 하나, 긴팔 티 하나로 일단 지내보려 합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빨래는 네 시간 정도면 말라요. 여러 가지를 잃어버립니다. 없어도 견딜 만은 해서, 일일이 마음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그렇거니 합니다.


   마음이 어수선합니다.  문장 적지 못했는 한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래도 적었으니 다행입니다. 걷다 보면 마음이 이런 날도 있는가 봅니다. 이것도 까미노의 일부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부스럭부스럭 사람들이 길 떠날 준비를 합니다. 오늘 하루 걸을 우리들의 길이,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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