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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 Apr 18. 2024

고양이 교환, 환불 규정

나는 너를 환불할까 했다

"데려가신 지 일주일도 안 됐기 때문에 원하시면 환불도 가능하세요"


전화기 너머로 펫샵 주인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가 드렸던 종이 보이시죠? 거기 보시면 교환 규정도 있으니까 저번에 안아보셨던 걔로 바꿔서 데려가셔도 되세요"


"아.. 그건 좀.."


자그마한 발로 피가 나도록 귀를 긁어대는 파로를 보면서 이거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파로를 돈 주고 사온건 맞으나, 교환 환불 규정에 따라 물리고 싶진 않았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고민은 되었다.


85만 원은 작은 돈은 아니었고, 아픈 걸 알고 데려왔으나 파로는 펫샵 주인의 설명보다 더 심각한 링웜 (고양이 피부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미 내 종아리에도 링웜은 옮아있었다.


가렵다, 미치도록 가렵다.


처음엔 단순히 모기에 물렸나 보다, 생각한 것이 점점 커졌고 결국엔 동그란 상처가 생겨 긁지도 못했다.


살아오면서 느껴온 가려움 중 단연 최고였다.


이 가려움과 괴로움, 너도 느끼고 있겠다.

당연히 파로에게는 더 크게 다가오겠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벅벅벅, 하며 긁는 소리가 꺼진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저대로 둬도 될까.


일단 병원에라도 데려가자, 싶어 맨 처음 집으로 데려왔을 때 사용했던 종이 가방에 파로를 넣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얘가 자꾸 긁어서요.. 귀를"


"한번 봅시다"


내가 들어 올린 손바닥만 한 생명체에 수의사 선생님도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어느새 내 주위는 몇 명의 초보 수의사들로 보이는 선생님들께 둘러싸였다.


그들에게선 치킨 냄새가 났다.


달콤한 야식시간에 얘가 뭐라고 다들 먹던 것을 멈추고 와서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들은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파로를 뒤적거렸으나 그들의 눈빛과 손길은 따뜻하고, 조심스러웠다.




야간의 동물병원은 진찰료만 8만 8천 원이었다.

바르는 약을 처방받고, 상처 부위를 긁거나 핥지 않도록 넥카라도 선물 받았다.


그래도 15만 원이 넘는 금액이 청구되었다.


이거, 아주 돈 덩어리구만.


파로는 자기 얼굴보다 훨씬 큰 넥카라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휘청, 휘청 대며 여기저기 부딪힌다.


세게 부딪히고 있진 않으니 저러다가 지쳐서 자겠지.


어느새 파로는 가슴팍에 올라와 뭐가 좋은지 고로롱, 고로롱 소리를 내고 있다.


너에게도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파로를 환불했다면, 너는 펫샵에서 또 누군가를 보며 반겼을까.


이제는 더 이상 펫샵에는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펫샵에서 고양이를 사 온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후회했다.


결국 펫샵에 있어서는 고양이는 상품이었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규정, 계약서 같은 것이 너무나도 날카롭게 느껴졌다.




알량한 도덕의식, 양심 같은 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파로를 데리고 온 순간부터 일주일간 내가 하루 동안 하는 생각의 대부분이 파로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아니라 나에게 '파로'라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환불도 교환도 할 수 없었나 보다.


왜 그랬을까.


 내가 사랑해 주려고 데리고 왔는데, 일주일간 파로는 내 곁을 떠나지 않으며 계속 울고 보챘다.

그렇게 나에게 관심을 주고 따뜻하게 나를 보듬었다. 내가 너를 안고 있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깟 15만 원, 몇 번이라도 써 줄게.

네가 나에게 준 일주일 치 사랑에 대한 보답 정도는 될 거야.



파로에게 적당한 사이즈의 넥카라는 없었다. 몸도 가누기 힘들었겠지만 너는 어떻게든 내 가슴팍 위로 기어올라 고로롱, 하며 사랑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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