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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 Apr 25. 2024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해 줘

고양이는 생각보다 빨리 큰다

 한 차례 심하게 앓고 나더니 파로는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이라도 알리려는 듯 미친듯한 먹성을 선보였다.


 예전보다 더 활발해지고 난리를 쳤으며, 먹고 많이 쌌다.

아무리 놀아줘도 지치지 않고 계속 들러붙었으며 헥헥거리다가도 금세 정신을 차리고 다시 푸다닥 푸다닥, 무슨 놀이를 하는지 정신없이 방안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진짜 빨리 크더라.


 그렇게 조그맣던 아이가 눈의 색깔이 노랗게 변하면서 점점 커졌고 무거워졌다.

내 가슴팍 위에 올라와서 자리를 잡으려고 움직일 때면 헉,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은 잘 놀더니 갑자기 툭 하고 유치를 뱉어냈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혼자 놀다가 어디에 부딪혀 부러진 줄 알고 발을 동동 구르며 인터넷에 찾아보니 원래 고양이는 이갈이를 한번 한다더라. 손에 쥐고 있던 파로의 이빨을 만지작만지작했다. 왠지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이사 오면서 잃어버린 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온전히 하나의 생명체를 내 책임으로 데리고 간다는 건 쉽지 않았다. 몇 개월짜리가 먹는 사료는 따로 정해져 있었고 똥을 제대로 싸는지 물은 적당량 잘 먹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해야 했다.


 많이 보챌 때는 너무 힘든 날이어도 누운 채로 고양이 장난감을 이리저리 휘적이며 놀아줘야 했고 어쩌다가 토라도 한번 하는 날이면 뒤적뒤적하면서 이물질 때문에 토한 건 아닌지 더러워도 확인해야만 했다.


 아이를 키운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아니 그것에 비교하는 건 무리겠지.


 분명 고양이는 독립적이라고 했는데 얘는 나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다.




 퇴근을 하려고 회사를 나서는데 눈이 오더라.

 그때 생각난 게 바로 파로였다.


 나는 눈을 좋아하는데, 너도 눈을 좋아하려나.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을 파로는 어떻게 바라볼까.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혹시나 도망칠까 패딩 안에서 고개만 빼꼼 꺼내서 파로를 꼭 안고 있었던 그날 우리는 함께 체온을 나누며 눈을 구경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맞는 겨울, 그리고 처음 보는 눈.


 그냥 자기만족일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얌전하게 너는 가만히 바깥세상을 보았다. 신기한가, 싶었다.


 파로의 코에서 자그마한 하얀 콧김이 나왔다.


 눈이 내리는 이 세상에, 이 동네에 내가 있고 파로가 있다.

 무럭무럭 커서, 오래오래 살면서 이 세상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해 줘.



장난감을 앞에 두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눈빛. 고양이의 눈 색깔은 평생 두 번 바뀐다고 한다. 신비로운 동물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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