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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 May 09. 2024

병원비와 안락사

고양이는 아프면 사람 눈에서 멀어진다

 동물병원에서는, 마치 갓난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듯내가 본 것을 토대로 말해야 하고 환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수의사 선생님은 보호자의 말로 동물이 어디가 불편해하는지를 유추해 낸다.


 그러나 지난밤 내가 본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은 재채기를 계속하며 구석지에 숨어서 나오질 않고 밥과 물을 전혀 먹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아, 그리고 며칠 전부터 오줌을 화장실에 싸지 않고 아무 데나 싼다는 이야기까지.


 "고양이는 깔끔 떠는 동물이라 화장실에서만 용변을 봐요, 그게 아니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죠"


 아무래도 목에 뭔가가 걸린 것 같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 엑스레이를 찍어보았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그럼에도 혹시 몰라 구토 유발제를 먹이기로 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말


 "재채기 맞죠?"


 만약 오늘 저녁까지도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내일은 수액을 맞아야 할지도 모르며, 내가 말하는 그 재채기가 뭔지 명확하지 않으니 동영상을 찍어오라고 하셔서 알겠다고 말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파로는 다음날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파로의 재채기 영상을 확보했다는 것. 그걸 본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셨다.


 "이거, 재채기가 아니고 기침이에요. 고양이가 이런 식으로 기침한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닙니다"


순간 등골에 소름이 바짝 돋았다.


고양이의 기침?


전혀 사람의 기침과는 다른 소리와 양상을 띠고 있는 이게 기침이라고 한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수액은 맞아야 할 것 같아요. 기침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합니다."


밥은 물론이고 물 마저 입에 대지도 않았던 파로이기에 이제는 영양분이 필요할 터. 축 쳐져서 눈만 껌뻑이고 있는 파로는 가끔 끄응 하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진료실에는 잔잔하게 파로의 털이 나부끼고 있었다.


 검사는 10종이 넘었다. 증상을 토대로 의심 가는 질병과 관련된 검사를 시행해야 했으며, 이상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확진을 위해 다른 검사를 시행해야 했다.

 그리고 어쨌든 잔인하게도 검사가 진행되는 대로 비용은 늘어만 간다.


 검사를 몇 개씩 끊어서 할 건지, 어떤 검사를 먼저 해볼 건지를 물어보시는 수의사 선생님께 답변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냥 다 알아서 해주시라고, 맡기고 싶더라.


 "오히려 처음에 한 검사에서 문제가 나오면 다행일 수도 있어요, 최소한 비용은 아낄 수 있거든요. 아이도 덜 힘들고."


 차갑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조언, 나는 검사들을 3개씩 진행하기로 했다.




파로에게는 방광염과 기관지염이 발견되었다.


이미 검사비만 백만원. 추가적인 검사를 진행할 건지 물어보시며 수의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냥 그런 게 있다고 말씀드리는 건데, 안락사 비용은 30만 원이 되지 않습니다"


 파로에 대한 걱정과 함께 불어나는 것은 비용에 대한 걱정이었다.


 검사는 검사대로 진행되고 있고, 검사 이후엔 치료가 남아있다.

 이대로 계속 밥을 먹지 않으면 입원도 해야 하며 입원비는 통상 하루에 2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앞으로 얼마를 더 지불해야 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


 금전적인 부분을 고민하게 되면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게 뻔했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웅크려 앉아있는 파로 배 밑에 손을 집어넣고 있더라.


심장박동, 빠르다. 그리고 뜨겁다.

와중에 고로롱 고로롱, 희미하게 진동이 느껴진다.


내가 준 밥을 먹고 이만큼 컸고, 눈 뜨고 잘 때까지 나만 바라보는 아이.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다고 고롱거리는 놈.

 나랑 똑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이고 파로와 함께하겠다고 선택한 것은 나다.

 지금도 내가 자기를 낫게 해줄 거라고 믿고 있지 않을까.


 일단, 이번엔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고쳐놓자.

 파로가 밥 먹는 소리를 앞으로도 더 듣고 싶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파로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의심이 가는대로 모래가 여기저기 튀는 게 싫어 화장실을 넣어놓은 큰 나무 상자에 대해 설명드렸다.


  고양이의 모래는 생각보다 먼지가 많이 날리기 때문에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설치해야 하고, 그 박스 때문에 안쪽에서 먼지가 빠져나가지 못해 파로가 아프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고양이가 사는 집은 사람이 사는 환경보다는 고양이가 사는 환경으로 만드는 게 좋아요. 물론 모든 것은 보호자님의 선택이지만요"


 결국은 파로가 그렇게 아팠던 것도 모자란 나의 탓이었다니.


 심한 자책감이 몰려왔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들을 내가 좀 더 편하게 살아보자고 바꾸고, 파로를 역으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프게 된건데 아무 데나 오줌을 쌀 때 혼냈고, 밥을 안 먹어 병원에 가야 할 때 돈 걱정부터 했다.


 내가 인간인가, 싶었다.


 결국 파로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었는데.


  그렇게 파로는 입원해 수액을 맞고, 3일 만에 스스로 밥과 물을 넘기기 시작했다.

  병원비는 어림잡아 300만 원. 그거야 벌면 되는 돈. 오히려 가벼운 생각이 들었다.


 저 조그만 놈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겪어야 했을 아픔,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걸 동거인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던 그 마음이 가여웠다.


 미안하게도 파로를 아프게 한건 다름 아닌 나였다. 안락사 비용을 듣고 생각보다 저렴하다 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처절할 정도로 밉게 느껴졌다.




 파로를 병원에서 데리고 오기 전, 문제가 되었던 나무 박스를 폐기하고 파로의 화장실을 창문 앞으로 옮겼다.


 날리는 먼지는 매일 닦으면 될 것이고, 파로가 싼 똥과 오줌의 냄새는 자주 청소해 주면 그만이다.

동물이 사는 집에, 동물의 냄새가 좀 나면 어떤가.


 이제부터 진짜 '같이' 사는 거야.

 우리 하루라도 더 살자.


 그날 저녁, 파로의 오독 오독 사료 씹는 소리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파로가 입원해 있던 곳. 수액을 맞고 정신을 차린 파로는 어깨 높이에 있는 케이지 문이 열리면 간호사님 손에 얼굴을 부비적 거리며 케이지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넥카라를 해야만 했던 파로. 언제 그랬냐는 듯 캣타워 위를 활보하는 파로가 얄밉지만 살아줘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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