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다 보니 알게 되는 너만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
여름이었다.
1인가구의 특성상 집에서 과일을 먹는 일이 많지 않았으나, 왠지 그날따라 수박이 너무 먹고 싶어 오는 길에 마트에서 1/4로 쪼개놓은 수박을 한쪽 사 왔다.
지금까지 노력은 많이 했으나 과일이 쭈그러들거나 상해버리는 일이 잦기도 하고, 그걸 감수할 만큼 과일이 저렴한 것도 아니기에 많이 참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수박 먹을 생각에 한껏 상기되어 들어온 나를 반기는 파로가 조금 이상했다. 뭔가 보채듯 조잘거리며 계속 다리사이를 지나다니고 치근덕댔다. 오늘따라 내가 반가운 걸까. 귀여운 녀석.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는 수박을 좀 먹고 나서 너랑 놀고 싶은데.
도마에 수박을 올려놓고 칼질을 하자 파로의 보챔은 더 심해졌다.
어, 설마. 이 수박 냄새에 반응하는 걸까. 그럴 리가 없어, 파로는 수박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고양이는 단맛도 못 느낀다고 하는데.
인터넷에 검색을 하는 내 손가락의 놀림이 바빠졌다. 고양이 수박 먹어도 되나요? 고양이 수박 부작용. 등등. 검색 결과는 고양이가 수박을 먹는 것은 수분섭취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괜찮지만 많은 양을 먹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적혀 있었다.
한 조각만 줘 볼까. 조심스럽게 파로에게 잘게 자른 수박을 내밀었다.
킁킁 몇 번 냄새를 맡더니 이네 왕, 하고 먹는 파로. 얘 수박 좋아했구나.
그때 이후로 수박이 조금 저렴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파로 한 입, 나 한 입 수박을 나눠 먹는 것이 여름 행사가 되었다.
우리만의 여름 맞이인 셈이었다.
사람마다 각각 취향이 있듯이 고양이도 취향이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참 많았다.
파로는 잘 때 내 오른쪽에서 자는 걸 좋아했고, 내가 기지개 켜는 것을 싫어했다.
재채기하는 소리를 무서워하는 대신 기침을 할 때는 마치 걱정하듯이 곁에 와서 내 얼굴의 냄새를 맡으며 건강상태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캔 간식을 그렇게까지는 좋아하지 않았으며, 피자를 먹을 때면 절대 달라고 보채진 않았지만 평소보다 더 가까이 와 앉아 피자를 먹는 것을 빤히 쳐다보곤 했다. 이 중에 그냥 그렇게 느끼는 착각도 꽤 있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이 조그만 고양이의 호불호는 어쩌다가 생겨났을까. 대부분은 본능이겠지만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생겨난 것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파로와 보내는 시간들에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양이이기 때문에 사람보다 단순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다른 집 고양이는 멜론이나 오이도 좋아한다길래 일부러 사서 건네봤으나 그건 별로 관심이 없더라. 와, 얘 진짜 자기 취향이 확고하네. 하는 생각이 들어 그것도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파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찾아주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가 눈치채지 못한 다른 것들도 있겠다 싶어 많은 것들을 경험시켜주고 싶어졌다.
수박도 그렇다. 몇 년 동안 집에서 수박을 안 먹다가 파로의 인생으로 치면 세상 처음으로 수박이라는 것을 본 건데 그렇게 좋아하다니.
파로도 추운 겨울이 지나고 슬슬 더워지면 지난해 나와 같이 먹었던 수박 한 조각을 그리워할까.
이쯤 되면 집사가 수박 사 올 때가 됐는데, 하고 기다리려나. 어쩌면 그때 내 얼굴을 보며 했던 그 야옹이 수박 사 오라는 말이었을까. 바보 같은 집사.
나는 이번 여름도 파로와 함께 수박을 먹으며 시작할 예정이다.
파로가 좋아하는 건 나도 좋아하려고 한다.
나중에 무지개다리 건너 만났을 때, 그때 왜 수박 안 사 왔냐고 잔소리 듣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