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kg이지만 나에겐 아기란다
어느덧 파로도 성묘가 되었다.
그렇게도 방정맞던 아기 고양이가 나이가 들수록 점잖아지고 조용해졌다. 정말 행복한 것은 사고를 덜 치는 대신 애교가 늘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몸에 손이라도 대려고 하면 그렇게 피하던 녀석이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고로롱거리면서 내 다리사이를 슥슥 지나가며 몸을 비벼댄다. 누워서 휴대폰을 하려고 하면 자기한테 집중하라는 듯이 시선을 가로막고는 내 팔에 자기 얼굴을 대고 푹, 눕는다.
이렇게도 사람과 붙어있는 것이 좋을까, 싶다.
돌이켜보면 그럴 법도 하다. 나는 2개월 된 파로를 데리고 왔고, 파로 기억 속에 자신에게 잘해준 존재는 나 밖에 없었으리라. 집에서 사는 고양이의 운명을 안쓰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영역동물이자 독립생활을 하는 동물이기에 파로에겐 내 집이 전부, 내가 전부일 것이다.
집고양이는 어미에게 쫓겨날 일이 없어 평생을 아기고양이의 마음으로 산다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해지며 책임감이 더 생기는 느낌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말하고 표현하라고들 한다. 실제로 동감한다. 어련히 상대방이 알아주겠지, 하면서 상대방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면 상대방은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파로와 몇 년 살아보니, 동물은 좀 다른 것 같더라. 말하지 않아도 안다. 눈빛만 봐도 이 아이가 나에게 느끼는 강한 애정을 느낄 수 있고, 파로도 그걸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나날이 나에게 자신의 곁을 더 크게 크게 내주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고양이의 묘한 애정표현이 좋다.
내가 자려고 누우면 파로도 슬며시 다가와 엉덩이를 내 다리에 슬쩍 댄 채로 잠을 청한다. 자기의 몸이 조금이라도 나와 닿아있으면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무릎 위로 올라오거나 하는 과감한 애정표현은 잠깐이고 내가 좀 잠에 든다 싶으면 옆으로 비켜서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꼼지락꼼지락 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다가 잠깐 깼을 때, 몸에 무언가가 닿아있는 느낌이 없으면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파로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서로를 향한 미묘한 애정표현. 이것은 말로 표현하기가 도무지 쉽지가 않다.
파로는 7kg 정도 나가는 대형 고양이이다. 모두들 파로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귀엽다고 말하지만, 나는 지금의 파로의 모습이 더 귀엽다.
내가 주는 밥을 먹고 이만큼 커버렸고, 거대한 몸으로 내 앞에서 뒹굴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내 휴대폰 앨범에는 파로의 사진이 누가 봐도 잘 나온 것보다는 내 눈에만 귀여운 사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파로의 나이는 7살. 사람의 나이로 치면 40대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는 거라고 한다.
이미 중년이 되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귀여운 고양이.
점점 더 애교가 늘고 있는 고양이.
파로의 귀여움은 나날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