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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 Jun 06. 2024

던져줘! 던져줘!

고양이에게 비싼 장난감은 필요 없다

 흔히들 고양이 장난감이라고 하면 낚싯대, 레이저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파로는 어린 시절부터 힘이 넘쳐흐르는 고양이였기에 호기롭게 집으로 사들고 온 장난감들이 안타깝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망가졌다.


 덕분에 그 비싼 장난감들은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하나씩 버려졌다.


 비싸면 좀 튼튼할까 싶어 다양한 가격대의 장난감을 준비했으나 오천 원짜리를 사 오건 만원 짜리를 사 오건 결과는 같았고, 그렇다고 놀아주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거의 일회용품처럼 고양이 장난감을 사다 날랐다.


 낚싯대처럼 생긴 장난감부터 시작해 자동으로 돌아다니는 쥐 모양의 장난감까지. 레이저는 고양이 정서에 좋지 않다길래 시도하지 않았다. (레이저는 잡을 수 없기에 고양이 성취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파로의 에너지는 멈출 줄 몰랐다.


 흔히 지랄묘라고 불려지는 종인 뱅갈고양이인 파로는 너무 숨이 차서 개구호흡을 해가면서도 놀아달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잠에 들기가 너무 힘들어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든 날, 30분 정도 잤을까.


 거실 쪽에서 사부작 사부작 하는 소리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깼다.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지만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는 오늘 밤 잠들 수 없을 것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파로가 흥분되는 멋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햄버거를 사면서 받았던 종이봉투였다.


 내가 돈 들여서 산 숨숨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던 녀석이 무료로 제공된 햄버거 종이봉투에 몸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재밌게 놀고 있다.


 얄밉다. 여러 방면으로 얄밉다. 그리고 귀엽다.

 백날 좋은 걸 사다 줘도 값어치를 모르고 본인의 마음이 더 끌리는 물건과 노는 파로가 귀엽다. 얄밉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돈을 쓴 건 내 사정이고 파로가 숨숨집에 들어가지 않는 건 내가 파로의 취향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은 돌고 돌아 내 탓이다.


이 날 이후로 햄버거를 사면 종이 봉투를 잠깐 바닥에 버려 노는 시간을 제공한다


 파로는 이후에도 말도 안 되는 물건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면봉, 고무줄, 츄파츕스 껍데기, 페트병 뚜껑.


 그중 파로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다름 아닌 100원짜리였다.


 혼자서 드리블하면서 샥샥 잘 놀다가 백 원짜리가 어느 틈새로 돌아서면 포기한다.


 그렇게 100원이 사라진다.


 잘 노는 것은 좋으나 매일같이 쓰레기통을 뒤져대는 통에 집의 위생과 파로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분명히 버렸던 것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으니 차라리 파로는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쓰레기통은 밀폐식으로 바꿔야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파로에게 적당하고 튼튼한 장난감을 찾았을까?


 절대 아니다.

 지금 파로에게 있어 최고의 장난감은 정체불명의 작은 공이다.


 던져주면 물어오고 던져주면 물어온다.

 딱 한 입에 들어오고 폭신하고 통통 튀는 게 좋은 모양이다.

 

 좋은 점은, 던지기만 하면 알아서 뛰어가서 주워오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많이 움직일 일도 없고 파로도 적당히 체력이 빠지기 때문에 서로 윈윈이라는 것.


 그러나 아무리 던져도 내 옆으로 돌아와 있는 빨간 공은 여느 도시괴담보다도 오싹하다.


던져달라는 간절한 눈빛이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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