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하루 평균 16시간을 잔다고 한다
파로와 함께 휴일을 보내게 되면 많이 자게 된다.
내가 요새 들어 나이를 먹어 체력이 쇠해졌나 싶었지만 약속이 있으면 잘 놀러 다니는 걸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아졌나 하니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냥 일정이 없으면 집에서 하루종일 있다 보니 자게 되는 모양인가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었다.
그러다가 이게 조금은 비효율적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더라.
생산적인 것들을 해도 모자랄 시간에 자꾸 졸려와서 낮에 잠을 자다 보니 정작 자야 할 밤에는 잠이 안 와 뜬 눈으로 지새우기도 했다.
그리고는 한두 시간만 자고 일어나 하루종일 비몽사몽하며 일을 했던 적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은 파로에게 있었다.
비겁하게 나의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에 대해 파로에게 모두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파로의 잠이 내 수면 패턴에 꽤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하루에 짧으면 12시간, 길면 20시간까지 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파로는 워낙 활동적이어서 20시간까지 자는 것 같진 않았지만 가만히 관찰해 보니 대략 최소 16시간은 자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여가시간을 활동적으로 보내기보다는 영화나 못 챙겨 봤던 TV 프로그램들을 챙겨보며 보내는 편인데, 원래 게으른지라 앉아서 보기보다는 누운 상태에서 보게 된다.
그럴 때는 어느새 내 옆자리에 파로가 똬리를 틀고 오는데, 만져달라고 고로롱 고로롱 소리를 내다가 내 손길이 멈추면 이내 잠에 든다.
정신 차려 보면 어떨 때는 코까지 골아가며 잠에 빠져있는 파로를 보게 된다.
결국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잠에 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맞다. 이것은 핑계이다.
파로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대견하게도 흔히 인터넷에 나도는 유머처럼 낮에는 잠만 자고 밤이 되어 집사가 자려고 하면 그제야 우당탕탕 하는 고양이의 모습은 파로에겐 없다.
아마 어렸을 때는 종종 그랬던 것 같다. 에너지가 넘쳐서 그때는 내가 출근할 때 말고는 계속 깨어 있는 상태로 나를 괴롭혔었다.
새들도 이렇게는 안 울겠다 싶을 정도로 운다거나, 뭔가를 뒤집어엎어 큰 소리가 나게 만들어 결국 잠을 포기하고 불을 켜게 만든다거나 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파로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나와 생활패턴이 맞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집에서 생활하면 졸졸 쫓아다니며 움직이다가, 침대에 누우면 그제야 쪽잠을 자는 수준 정도이다.
물론 밤이 되어 불을 끄면 파로도 내 옆으로 와서 잠을 청한다.
그렇게 파로가 자는 모습은 나에게 평온함을 준다.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는 미세한 소리. 공기가 왔다 갔다 하면서 들썩이는 말랑한 배.
살짝 움직인다 싶으면 실눈을 떴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잠에 드는 모습.
그 모든 모습들이 너무나도 평화롭다.
저 아이가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도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인 이 집에서 나도 안전함을 느낀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귀를 팔랑 거리면 무슨 재미있는 꿈이라도 꾸나, 싶다.
귀여워서 건드려 깨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잠에 들고 나서야 엽기 떡볶이를 시켜 먹는 엄마 아빠의 마음처럼, 왠지 모르게 파로의 수면시간은 보장해주고 싶다.
바깥세상을 많이 구경하지 못한 파로의 꿈에는 이 공간이 그대로 나올까.
아니면 파로가 그리고 있는 다른 곳들이 있을까.
저 아이의 꿈에는 나도 나오려나.
꿈속에서도 파로가 재밌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