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호기심의 동물이다
고양이는 무신경하다고들 한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으며 주인에 대한 충성심도 없다며 반려동물의 양대산맥인 강아지와 비교당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무신경한 만큼 고양이는 다른 곳에 호기심을 쏟는다.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긴 파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욕실에 들어와 하수구 구멍을 헤집어 놓은 적이 있어 파로에게 욕실 출입 금지 선언을 한 적이 있다.
그 선언은 아직도 유효한데 그러다 보니 내가 욕실에서 하는 모든 행위들은 파로를 본 적이 없다.
항간에는 욕실에서 샤워하는 집사가 위험해 처했다고 생각해 문을 긁고 기다리고 한다는데 그건 그냥 인간의 생각일 뿐이고 고양이들이 정말 어떤 마음으로 욕실 문 앞에서 집사를 기다리는지는 그들이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날이 더워지면서 에어컨을 틀어놓은 채 욕실 문을 열고 샤워를 하게 되었는데 안쪽에서 바지런히 씻고 있는 나를 파로는 갸우뚱갸우뚱하며 계속 쳐다본다.
아마 그날이 파로 인생에서 처음 집사가 샤워하는 걸 본 날이 아닐까 싶다. 기념일이라고 봐도 무방한 셈.
한 편으로는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뭔가 바쁜 내가 재미있는지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파로를 보면 웃긴다.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모르기 때문에 오는 호기심은 겨울에도 마찬가지로 발동된다.
고양이가 있는 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천장에 단다고들 하는데 지극히 공감한다.
조용히 지내던 크리스마스를 그 해에는 뭐라도 해보고자 트리를 설치했었는데 거기에 달린 장식품이고 불빛이고 전부 파로 손에 해치워졌다.
출근하는 게 두려워질 정도였다. 파로의 의사를 묻지 않고 설치한 내 잘못이겠지만 말이다.
고양이의 호기심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줄어든다고 한다.
지금은 진짜 별거 아닌 물건에도 과할 정도로 집착을 하며 호기심을 보이는 파로이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무신경해지는 모습을 보일 것을 생각하면 은은하게 마음이 아파온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겪어야 할 일이고 파로가 겪어야 할 일이기에 의연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적어도 지금은 아직 팔팔하고 나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파로가 기특하고 대견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파로의 짧다면 짧은 인생 안에서 기분 좋게 궁금한 것들을 하나라도 더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
내가 뭔가를 준비한다고 해서 파로가 흥미를 가질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