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낯 가려요
다른 집 고양이들도 그렇겠지만 파로는 유독 어려서부터 사람 손을 많이 탄 고양이였다.
발랄한 아기 고양이 시절에도 그 누가 들어와도 자신을 좋아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달려들어 애교를 부리곤 했고 성묘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아이가 고양이가 맞나 의심스러운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로 파로는 흔히 말하는 '하악질'을 단 한 번밖에 해본 적이 없다.
고양이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많은 모습들 중 하악질은 특히 강아지와 크게 다른 점으로 꼽히곤 하는데, 착한 건지 둔한 건지 파로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딱 한번 하악질을 했었다.
그것도 손톱 깎아주는데 자기 손 잡고 안 놔준다는 보잘것없는 이유로..
두 번째로는 사람만 보면 배를 까뒤집고 누워서 뒹굴거린다는 것이다.
너무 그러길래 고양이에게 배를 까뒤집고 뒹굴거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까지 찾아본 적이 있다. 너무 편안하고 기분이 좋고 반가울 때 그런다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가끔은 서운하기도 하고 그렇다.
이 이유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하고도 연결고리가 있다.
어떨 때는 사람인 나보다도 낯을 안 가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 파로는 사람을 좋아한다.
처음 보는 존재이지만 저 존재가 자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예뻐해 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로에겐 그게 존재한다.
다만 예외인 상황이 있는데, 집에 벨을 누르고 들어오는 사람은 지극히도 경계한다는 것이다.
이건 내 불찰이기도 하다.
처음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왔을 때, 1인 가구라 파로를 한쪽 방에 넣어두고 문을 닫은 채로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이 왔다 갔다 거리며 짐을 나른 적이 있었다.
나는 냉장고를 바로 사야 해서 근처 전자제품 마트에 잠깐 들렀었는데,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에게는 저 방에는 고양이가 있으니 열지 않고 작업하셔도 좋다고 말씀드렸었다.
냉장고를 둘러보던 중에 작업이 끝났다는 전화가 왔고, 집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알겠다고 말씀드린 뒤 2시간 정도 지나 집에 도착했었는데 열지 말라고 했던 방문은 열려있었고 파로는 반대편 방의 침대 밑에 웅크려 나오질 않았다.
이사를 가면 고양이가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미 파로를 집으로 데리고 오고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저런 식으로 행동하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대충 추측하자면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어떤 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것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들을 수 없는 일.
ㅗ
그때 이후로 파로는 벨을 누르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지극히도 경계한다.
재밌는 건 같은 사람도 도어록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오면 아군으로 간주해 배를 까뒤집는다는 점.
혼자 살면서 고양이를 키울 때 가장 가슴 아플 때가 내가 집을 비워야만 할 때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파로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해도, 내 집에서 묵을 순 없으니 잠시 와서 생사만 확인하고 밥 주고 돌아가는 식이라 사람을 지극히도 좋아하는 파로에겐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 것이다.
내가 두 번째 고양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하는 말 중에서 나에게는 바깥에 나가면 친구도 있고 하지만, 집에 있는 동물들에게는 내가 전부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며 죄책감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건 파로는 내 이런 고민을 전혀 모른 채 마냥 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난 괜찮아,라고 하며 어른스러운 척했으면 더 가슴 아팠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파로이기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인간으로서에 욕심이 앞서 파로를 혼자 둘 때가 많다.
결국은 오늘도 자기 전에 가슴팍 위에 올라와서 골골거리는 파로에게 미안해.. 하며 사과하겠지만 언젠가는 행동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무지개다리 건너서 서로 만날 때 혼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