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사쿠 킨지, 배틀로얄
그러면 안 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중학교 3학년 때 접했다. 그것도 학교에서, 그것도 선생님이 틀어주셨다. 2000년 개봉, 개봉한 지 정말 오래된 영화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많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까지도 엔터테인먼트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영화 '배틀로얄'은 아직도 틀면 한 호흡에 전부 볼 수 있을 정도로 재미가 있다.
중학교 3학년의 한 학급을 통으로 무인도로 데리고 가서 무기를 나눠 주고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죽여야만 게임이 끝난다는 충격적인 콘셉트.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현지에서 2001년 (영화 개봉은 2000년이지만 12월에 개봉하여서 흥행 집계는 2001년에도 계속되었다) 흥행 성적 3위를 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단지 이 영화는 재미가 있어서 인기가 많았던 것일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경쟁이 만연한 현실 세상을 무인도로 옮기다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다들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상은 경쟁이 만연하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승진에 도전하고 있는 이들보다 한 발 앞서야 하는 것은 물론, 하물며 인기 있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남들보다 더 빨리 클릭을 해서 티켓팅을 해야 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 순간 한 순간이 경쟁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어 보인다. 낫을 들고 살육의 춤을 추며 닥치는 대로 친구들을 죽이던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슬픈 사연들을 집요하게 보여주며, 그녀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했던 이유를 납득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마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다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기를 무기로 쥐어주다
영화 속에서 무기는 무작위로 주어진다. 강력한 산탄총을 받는 학생도 있는 반면, 어떤 학생에게는 냄비뚜껑만이 제공되기도 한다.
세상이 그렇듯 모두가 각자 잘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빛을 발하기도 하고 묻혀 지내기도 한다.
'배틀로얄' 에서는 목표를 생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피지컬적인 능력을 통해 남의 무기를 빼앗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영화 속에서 치팅, 그러니까 비겁한 행위로 다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 속에서 도덕성, 그리고 법규는 사라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래서 가끔 볼 수 있는 현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벌이는 나쁜 행동들마저 '배틀로얄' 에서는 하나의 능력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여금 관객들은 더 단순하고 편하게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영화의 설정상 등장인물들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기 때문에 폭력성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 버리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혐오스럽다고 느끼며 영화의 만듦새를 깨닫다
경쟁하는 사회가 싫다!라고 말하기는 편할 것이지만 아직도 TV를 켜면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부와 명예를 한 번에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승자는 강하니까.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다시 내가 경쟁해야 하는 사실에 숨 막혀한다. 대단한 모순이다. 나는 경쟁하기 싫은데, 다른 사람들이 경쟁하는 걸 보는 것은 좋아하는 것. 그런 모순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순간 이 영화가 정말 크게 다가왔다.
아까 말했듯 난 이 영화를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쭉 좋아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경쟁해야 하는 삶에 지치기도 했다.
이게 이 영화가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인간의 내면이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혹은 커다랗지만 숨겨져 있던 가학성을 꺼내어 영화를 즐기게 하고 나 자신을 돌이켰을 때 아차 싶었던 그 역겨우면서도 헛웃음이 나오는 무언가.
단순하게 학생들끼리 때려죽이는 폭력적인 영화에 그칠 수도 있었지만, 이것이 사회를 반영하는 영화라면 누군가는 내가 경쟁하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은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폭력적인 영화는 정신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그만 만들라는 대중들의 다그침에 짜증을 냈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단순한 반응은 논리가 없는 반응이 아니라, 논리가 필요 없는 반응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세상이 끊임없이 서로를 직, 간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을 위태롭게 지켜주며 평화롭게 보이게끔 하는 것이 도덕이며 법규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든 '배틀로얄'은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