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로 Apr 27. 2024

내가 의심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었던가

J.J 에이브럼스, 클로버필드 10번지

Suspense, 서스펜스

어떤 상황에서 불안하고 긴장되는 조마조마하며 화끈거리는 불안정한 심리, 또는 그러한 심리 상태가 지속이 계속되는 모습을 그린 작품 혹은 연출 기법을 말한다. 한국어로 치면 '들었다 놨다', '쫄린다.'에 가까운 의미가 있다.


 장르 영화의 성공 여부는 구현해내려고 하는 장르의 맛을 얼마나 관객이 잘 느끼게 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장르 영화가 어렵다. 내가 보고 있는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말 실제로 겪고 있는 것처럼 리얼하지 않으면 관객들은 그 영화 자체를 못 만들었다고 생각해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코미디 영화인데 안 웃겨요’ 라던지 ‘공포영화인데 안 무서워요’ 같은 평을 듣는다면 감독 자존심도 크게 상해 버릴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에 있어서 J.J 에이브럼스가 총 제작한 ‘클로버필드 10번지‘

는 가히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가 났던 것이 마지막 기억인 주인공은 잃었던 의식을 되찾자 본인이 족쇄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납치다,라고 생각한다.


 곧이어 잠겨져 있던 문이 열리고 낯선 남성이 들어와 ‘널 살려줬으며, 바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염되어 나갈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혼란스럽다. 이 남자의 말이 맞아서 바깥세상이 망한 건지, 이 남자가 납치를 위해 거짓말을 친건지 잘 모르겠다. 모든 게 다 의심스럽고 바깥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가만 보니 남자도 주인공을 해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당신은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 선택이 그때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의심은 합리적인 의심이며 근거가 타당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고 여긴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사실은 네가 하고 있는 그 생각이 틀린 생각일지도 몰라"라고 넌지시 말해준다.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은 객관적이려고 하는 것이지 객관적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그래서 무섭다.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보면서 나는 계속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뭐가 맞는지를 판단하려고 들었다. 그것마저 제작자의 계획이었다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며 껄껄 웃으며 뿌듯해했을 것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했던 감독의 계획


 보통 이런 류의 영화의 경우에는 감독이 관객들이 보고 의심했으면 하는 정보들을 던져주며 의심을 한쪽으로 작위적으로 몰고 간다. 그것에 속아 넘어간 관객들은 결국 마지막에 터지는 반전을 보며 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게 있었네 라며 감탄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보여주고 싶은 것에 한정되어서 보여주는 감독의 트릭이 있다기보다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역으로 주인공과 시선을 함께하는 관객들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것 같아 더 혼란스럽게 되어 버린다.


 스크린이라는 한정적인 시야를 선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 공개'해 버림으로 더 헷갈리게 만드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저 '모두 공개' 방식은 관객 스스로에 대한 의심마저 거두게 한다.

아 이 영화는 저 정도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나에게 더 많은 단서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영화 후반부의 결말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허탈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느꼈던 것은 허탈감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라고 말하며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디까지 갈지에 대한 한계를 정해버리고 단정 지어버린 죄책감.


 돌아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의심은 살아가면서 늘 하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그 의심이 절체절명의 순간 내 눈앞에 벌어진다면 어떻게 선택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영화가 재현해 낸 현실감은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가볍지 않았다. 내가 하는 판단이 올바른가, 지금까지 했던 판단들이 맞는 판단이었던 것일까 하는 의심을 다시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중요한 판단을 할 때에 나는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떠올린다. 어쩌면 너무 방어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내린 결정을 의심하고 다시 의심한다. 이 영화는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 01화 경쟁의 미학, 인정하긴 싫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