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nymous Apr 18. 2024

13.  나 빼고 가라니까 왜 안 가니.

- 나는 지난 십 년간 시댁 가족여행이 마냥 좋아서 매년 갔겠니.

결혼하고 매년, 시댁 가족여행을 갔다. 시누네 부부는 결혼 전부터. 아이들이 생기고는 아이들과 다 함께. 4월과 5월에 어머님, 아버님 생신과 어버이날이 몰려 있는데 여러 번에 걸쳐 챙길걸 한 번에 줄여서(?) 일박이일(때로는 이박삼일)로 여행을 갔다. 나를 배려해서 그렇게 한 번에 단촐하게(?) 한다는 것이 남편의 이야기였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 모시고 다 같이 여행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버이날이라고 우리 집에 간 적이 있던...가?)

     

나는 올해는 못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냥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요양병원에서 전화 통화할 때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솔직히 매년 아들, 딸 손주들 다 데리고 가족여행 가는 집이 얼마나 되냐고 했더니, 자기는 꼬옥 가족여행을 매년 가야겠단다. 부모님께 해드린 것도 없고 그거라도(?) 해야겠단다. 정 싫으면 너는 빠져도 된단다. 그래 그러라고 했다. 그 후 통화가 이어지는데 목소리에 기분 나쁨이 묻어나기에 전화를 끊은 후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자기야 생각해 보니 내가 가족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자기 섭섭한 마음이 들 수 있을 것 같아. 

늘 챙겨주시고 애들도 봐주시는 어머님, 아버님께도 해드린 게 없는 것 같아 잘해드리고 싶은 자기 마음도 너무 이해가 가구! 


고모랑 잘 이야기해보구 잘 계획 짜서 다녀와. 올해 같이 못 가는 거 양해 부탁해.     

대신에 나는 그 주에 친정에 가서 엄마, 아빠와 어버이날을 기념하며 보낼게. 

생각해 보니 나도 어버이날과 엄마 아빠 생신을 따로 챙긴 적이 잘 없는 것 같아서^^; 

아빠야 명절 때랑 겹치니 케잌으로 때웠던 것 같고 엄마는 전화나 하면 다행이었거든.     

우리 엄마 아빠를 봐도 건강하실 때 잘 챙겨드리고 같이 여행 가고 하는 게 참 좋은 것 같아! 

나는 그건 못하니 얼굴이라도 보고 밥 먹고 올게 ㅎㅎ      

열일하는데 아프단 핑계로 나만 놀아서 미안 대신 얼른 낫고 컨디션도 회복할게. 사랑해 ♡”          


남편에게서 단촐한 답장이 왔다.     


“그래 그게 좋겠다! 이번에 그렇게 하는 걸로 할게~~ㅎㅎ”     


참으로 황송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그 주말, 시누네 갔을 때 어찌할지 상의해 본다고 하더니 결국 여행은 안 가고 밥을 먹는 걸로 얘기가 되었나 보다. 제주도 있을 때 카톡이 왔다.

      

“아, 이번 부모님 생신 겸 어버이날은 여행 안 가고 00일에 ㅇㅇ네(시누네) 내려와서 식사나 한 끼 하기로 했어~~~~~”     


하..... 왜 매년 가던 여행을 안 가는 거지. 그럼 난 친정에 갈 수 있는 걸까.

저 식사에 나도 가야 하니 저렇게 얘기한 거겠지....?     


일단 '응 알았어' 하고 톡을 보낸다.          


----------


나중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이번엔 식사도 안 하기로 했다고, 어머님 아버님 두분이 여행을 가신다고 했다며 용돈이나 좀 드리면 될 것 같다고 한다.

     

그럼 그 주말이 비니 나는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원래 그 주말에 시부모님과 식사를 해야 하면 그다음 주인 어버이날 연휴 때 여행을 가는 길에 친정에 들러 밥을 먹을까 했었다. 남편은 연휴 때 여행은 돈이 많이 들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근교에 당일치기나 가잔다. 나는 예약해 놓은 숙소를 취소했다. 그럼 그러자고, 대신 그 전주에 친정에 다녀올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애들과 같이 갈지 아니면 두고 갈지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두고 가면 자기가 주말에 보겠단다.


“.... 그러니까 자기는 갈 생각이 없다는 거지?”

“응. 집에서 쉬고 싶네.”     


ㅋㅋㅋㅋㅋㅋ.....     

알겠다. 우리 부모님도 아이들 본지 꽤 됐으니 이번에 내가 데리고 다녀오겠다고 했다.

네가 안 가니 나도 안 간다는 그 본전 찾는 속내가 빤히 보였다. 나는 지난 십 년간 마냥 좋아서 갔을까. 역시 이제부터는 시댁 가족여행은 가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확신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12. 우리 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