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주 - 저속 생활

덕분에 느리게 살아보다

by 화랑

“당신이랑 닮은 동물을 찾았는데...”

뭘까, 귀여운 강아지? 도도한 고양이? 아님 토끼?
“쥐야. 쥐랑 똑같아.”
"..."


남편은 내가 작은 체구로 안절부절하며 서두르는 게 쥐랑 닮았다고 했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종종거리며 바삐 움직이고, 말도 빠른 데다 밥도 후다닥 먹어서 옆에 있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단다. 너무나 맞는 말이라 실소가 터져 나왔다. 차분한 남편과 달리 나는 성미가 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한 편이다. 처음 보는 낯선 길에서도 냅다 몸이 먼저 나가고 사람 많은 곳에선 앞서고 싶은 마음에 빈틈을 헤치고 들어간다. 안 그래도 덜렁대는데 뭔가 두고 오기라도 하면 우다다 뛰어가니 옆에서 정신이 없을 만도 하다.


마침 병자년 쥐의 해에 나를 낳은 엄마는 다리가 길고 걸음이 빠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슈퍼와 시장, 목욕탕과 백화점을 따라다녔다. 엄마가 시선은 앞을 향한 채 오른손만 뒤로 내밀어 반짝반짝 손을 흔들면 나는 얼른 그 손을 붙잡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쫓아갔다. (실수로 모르는 아줌마 손을 잡은 적도 여러 번이다.) 아빠는 어딜 갈 때면 1시간을 앞당겨 출발하는 습관이 있다. 주말에도 명절에도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나 멀끔하게 준비를 마친 채 현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언니랑 나는 헐레벌떡 잠에서 깨 고양이 세수를 하고 신발을 구겨 신었다.


가정환경이 급한 성격의 불씨를 지폈다면 직장 생활은 기름을 끼얹었다. 초등교사가 되고부터 나는 내가 없는 사이 사고나 다툼이 일어날까 봐 늘 불안했고, 이는 잠시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보건실에 학생을 데려다줄 땐 내 손을 끌고 가던 엄마처럼 성큼성큼 걸었고 준비물을 챙기러 갈 땐 복도를 내달렸으며 화장실은 꾹 참다가 뛰어갔다 왔다. 수업은 역동적인 활동으로 꽉 채우려 노력했는데, 공백이 생겨 늘어지는 순간 딴짓을 하거나 떠드는 학생들을 보기가 힘들어서였다. 누군가 발표하다 뜸을 들이거나 뭉그적대며 과제를 미루면 당황스럽고 답답한 마음에 등줄기에 땀이 주루룩 흘렀다. 얼른 가서 도와주려다 스텝이 꼬이는 나를 보고 학생들은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며 걱정해 주었다. 행정 업무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고 싶었다. 나에게 효율이란 퇴근 시간 안에, 정확하고 신속히 맡은 바를 해결하는 것이었기에 쥐처럼 듀얼모니터를 왔다갔다하며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갔고 컴퓨터와 프린터가 버벅거리면 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었다.


쫓기듯 사는 건 식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눈 뜨자마자 출근하기 바빴던 나는 아침을 자주 걸렀고 먹더라도 샌드위치 정도가 다였다. 보통은 학교에 도착해 모니터를 켜고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굴리며 왼손으로 아침을 먹다가 학생이 등교하면 남은 걸 한 번에 욱여넣었다. 점심은 건강하고 맛도 좋은 급식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먹으면서도 계속 전방을 주시했고 무슨 일이 생기기면 곧장 가서 지도했다.


그러다 올여름부터 산전휴직을 하게 됐다. 이는 곧 출퇴근을 비롯한 각종 의무의 종결, 민원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으며 당분간 누가 다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공격적인 문제 제기가 나올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 뜻이었다. 불안과 공포가 내려앉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여기에 배가 나와서 움직임이 둔해지고 혈당 관리를 위해 식이요법을 지키면서 나는 처음으로 느리게 살기 시작했다.


요즘엔 아침 식사를 1시간 동안 한다. 먼저 유산균 한 포를 입에 털어 넣은 뒤 전기포트로 물을 데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소파에 앉아 따뜻한 물 한 컵을 조금씩 마시면 서서히 몸이 깨어난다. 이어서 삶은 계란과 낫토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후식으로 그릭요거트를 먹는다. 점심, 저녁도 비슷하다. 채소 먼저, 다음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로 최대한 천천히 먹고 식후 산책도 빼놓지 않는다. 중간중간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남편과 대화도 하고 심심할 땐 책도 읽는다. 이렇게 하니 매 끼니가 코스 요리 같다.


운전할 땐 되도록 시속 60km를 지키고 길을 건널 때도 서두르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주황색 신호를 보면 재빨리 액셀을 밟고, 횡단보도 초록불이 10초 남아서 깜빡일 때조차 무작정 뛰고 보는 사람이었다. 위험해서 심장이 벌렁거려도 기다리는 건 왠지 손해 같았다. 임신 후기에 접어들수록 뛰긴커녕 빨리 걷기도 어려워져서 이젠 초록불이어도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이참에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본다. 맞은편 건물의 간판과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 가로수 나뭇잎의 색깔, 구름의 형태와 움직임 같은 것들. 성질 급한 쥐는 느긋한 나무늘보로 변했다.


다닥다닥 겹쳐있던 일상이 벌어지자 군데군데 틈이 생겼고 그 틈엔 여유가, 고요가, 사유가 자리 잡았다. 이제야 나는 계절에 따른 풍경의 아름다운 변화라든지 하루하루 미세하게 다른 날씨를 체감하고 음식을 먹을 때 첫 입부터 마지막입까지 맛과 식감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멈췄을 때 짜증 내기보다 그 순간을 빌려 잠시 멍 때리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걸음이 느려진 대신 사색이 늘어나서 봄의 싹처럼 사유가 여기저기 움트고 충만해진 사유는 저마다 풍선처럼 부풀어 메모장에 짧은 일기가 겹겹이 쌓인다. 느림은 비효율이 아니었다. 기다림은 손해가 아니었다. 드디어 나는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았다.


몇달 뒤 아기를 낳고 키우게 되면 한 시간짜리 아침 식사는 꿈도 못 꿀 게 뻔하다. 더구나 복직이라니, 초보 워킹맘은 다시 쥐로 돌아가 숨 가쁜 일상에 금세 여유를 반납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가 먹고 남은 음식을 허겁지겁 해치우며, 아무 옷이나 꺼내 입은 채 나가려고 서두르는 산발 머리의 내가 벌써부터 그려진다. 그러나 느리게 한번 살아봤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인생에도 메트로놈이 있다면 적어도 이젠 어디에 그 템포를 맞춰야 할지 안다. 세상이 나를 재촉하더라도, 육아와 일에 쫓기더라도 나만의 메트로놈을 보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어떤 하루를 보냈든 자기 전에 한 번은 블루스에 몸을 맡기는 독특한 쥐가 되고 싶다. 그 시간에서 힘을 얻어 넉넉한 품을 가진 엄마, 느린 학생을 기다려주는 교사로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추구미: 나무늘보 / 도달가능미: 잠깐 여유로운 제리
햇빛 아래에서 천천히 먹는 아침과
빨간 불일 때 즐기는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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