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미, 《다시 오지 않는 것들》
P07. 너만으로 충분해 - 최영미,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출판사)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만큼’이라는
시인의 고백이
가슴을 칩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시인은
이렇게 토로했을까요.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다만 이 햇살 아래 오래 서 있고 싶다’라고요.
흑백 사진은
실은
회색빛 사진이 아닐까요.
실제로
흑백 사진에
가장 많이 담기는 색깔은
흑색이나
백색이 아니라,
회색입니다.
물리학,
또는
광학의 시각에서
사물의 진정한 색깔이란
없는 게 아닐까요.
시인은 규정합니다.
‘인생은 낙원이야. 싫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낙원’이라고요.
시인의 통찰이
빛나는 순간입니다.
사진에는 빛만 있고,
소리가 없다는 사실이
문득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한갓진 영화관,
한갓진 미술관,
한갓진 카페는
어딘가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그런 곳에 가고 싶네요.
아니, 있고 싶어요.
시인은 고백합니다.
‘위로받고 싶을 때만 누군가를 찾아가, 위로하는 척했다’라고요.
그 위로의 행위는
그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겠지요.
답이 나왔군요.
위로받고 싶을 때는
위로하세요.
사랑받고 싶을 때는
사랑하세요.
‘충분히 유치해지지 못해 너를 잡지 못했지’라는
시인의 탄식이
가슴을
아프게 저미고 듭니다.
그래요.
“너만으로 충분했다. 지금도 너만으로 충분해. 앞으로도 너만으로 충분할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한 번만이 아니라,
자꾸, 자꾸, 자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