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미,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P05. 지나간 사랑과 오지 않는 사랑 사이 – 이성미,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시인선299)
시인은
가만히
다짐합니다.
‘그림 하나 걸릴 수 있도록 벽에 콕 박혀 있어야겠다’라고요.
벽에 콕
박혀 있겠다는 마음의
갸륵함―.
그래야
그림을 걸 수 있고,
그래야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마
그런 마음이었기에
시인은
‘내 마음속에 나비가 날아다녔다’라고
고백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나비가 날아다니는
마음이었기에
그림 하나
걸릴 수 있도록
벽에 콕
박혀 있기로
결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어쩌다 입을 여는데 꽃잎들이 풀풀 나와 그녀와 나 사이를 떠다닌다’라는
시인의 또 다른 고백.
그래요.
나비가 날아다니는
마음에서만
꽃잎들이 풀풀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
시인처럼
‘장자와 실비아 플라스 사이 지나간 사랑과 오지 않는 사랑 사이’에
고요히 머물며
‘형광등을 켜고 젖은 시집을 다림질’
하는
그
아프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요.
저는
시집 뒤의 해설을
읽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저만의 오독을
즐기고 싶으니까요.
포기하기 싫은 이
오독의 자유로움―.
그래야
시집 읽는
기쁨이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부풀어 오른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