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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Oct 29. 2024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_14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14.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13. 고뇌의 밤

   바람 소리 사납고, 방 안에 있는데도 입에서는 날숨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추운 밤입니다.

   사제는 창가에 서 있는 채로 또 독백합니다.


   ‘또다시 무서운 밤이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너무 거세어 성당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제는 탁상등을 켜둔 책상으로 돌아와 앉아 머리를 숙이고 괴로워합니다.


   ‘더는 기도를 못 하겠다. 한 가지 나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피에는 산소가 필요한 것처럼 나한테는 기도가 절실했다. 내 뒤에 놓여 있는 것은 도망쳐온 일상의 가정사가 아니었다.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앞에는 검은 벽만이 가로놓여 있었다.


   기도하지 못하는 사제―.

   이보다 더 그가 처한 실존적 상황의 심각함을 선연하게 드러내어 주는 말이 또 있을까요.

   사제는 두 손에 머리를 파묻습니다.

   사제는 씁니다.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부수어졌다. 한 시간 넘게 떨어야만 했다. 이것이 그저 환상이라면…….


   또 씁니다.


   ‘온전히 받아들이거나, 온전히 포기하는 자세를 취하고 싶었다. 똑같은 고독과 똑같은 침묵이 흘렀다. 장애물을 뛰어넘을 희망이 없다. 아니, 장애물 자체가 숫제 없는 것은 아닐까.


   사제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탁상등을 집어 들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마침내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심각한 내용의 독백을 합니다.


   ‘신께서 나를 떠나신 것이 확실하다.


   사제는 마침내 신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야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이튿날이면 그 전날과는 다른 바로 그날만의 해가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날이 다시 밝으면 간밤에 스스로 사로잡혀 있었던 고뇌에서 벗어나 생각을 달리하게 마련이지요.

   그날의 걱정은 그날로 족하니라―.

   이것이 인간입니다.

   사제는 씁니다.


   ‘나는 내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내 건강이 놀라울 정도로 회복되어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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