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15.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14. 의사 델방드의 죽음
이 대목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제가 어디선가 느닷없이 발사된 총소리를 듣고 멈추어 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앞서 백작이 토끼를 잡아다 사제한테 가져다주던 장면을 고려하면 퍼뜩 사냥의 이미지부터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지만, 이어지는 것은 전혀 뜻밖의 상황입니다.
먼저 성당에서 사제가 누군가에게 묻습니다.
“델방드 박사님이요?”
이어 성당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나타나 사제한테 사정을 설명해 줍니다.
우리가 방금 전의 총소리가 어찌 된 영문인지 알게 되는 것은 사제와 마찬가지로 이 설명을 통해서입니다.
“오늘 아침 두개골이 박살 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네. 개암나무에 걸쳐놓았던 총이 잘못 발사된 것 같다더군.”
설명대로라면 단순한 오발 사고 같지만, 사제의 얼굴에 드리운 수심의 빛은 보는 이에게 그것이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하긴 헤밍웨이도 ‘자살로 의심되는 오발’ 또는 ‘오발로 추정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니까요.
어찌 보면 총을 가진 자가 총으로 죽는 것은 당연한 듯싶기도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총만큼 자살의 이미지를 쉽게 연상시키는 매개체도 드문 것이 사실이지요.
다음은 막바로 장례식입니다.
그것도 모든 절차가 이미 끝나고, 참석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사제는 또르씨 사제와 나란히 묘지를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사제의 독백입니다.
‘또르씨 사제는 이틀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힘들어 보였다. 소문은 자살이었다.’
여기서도 또르씨 사제는 차를 타고, 젊은 사제는 자전거를, 이번에도 역시 타지 않고 끌고 갑니다.
다음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교통수단에 몸을 의탁한 채로 나누는 대화로,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먼저 젊은 사제가 차 안의 또르씨 사제한테 말을 건넵니다.
“사제님 생각에는 혹 델방드 박사님이……”
“맞아. 그 사람은 꽤 깊은 실의에 빠져 있었어. 마지막 날까지 환자들이 자기를 찾아올 줄로 믿고 있었던 거지. 젊은 의사들이 그가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낸 뒤로는 환자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버렸거든. 환자가 찾아주지 않는 의사가 무슨 소용이겠나. 모르긴 몰라도 버림받은 느낌 아니었을까. 외로웠을 거야.”
이는 혹은 의사 델방드가 사로잡혀 있던 고민의 살상일 수도 있고, 혹은 또르씨 사제 혼자만의 일방적인 해석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세상을 버린 사람의 속마음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아닐까요.
설사 유서(遺書)를 남겼다고 한들, 그게 그 속마음, 그 실상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젊은 사제는 또 독백합니다.
‘이런 깊은 속이야기는 소화해 내기 힘들다. 인두로 상처를 지지고 드는 느낌이다. 이토록이나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앞으로 이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 또 올까. 죽을 때도?’
사제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은 것이라면 사제님 생각에는…….”
또르씨 사제는 이번에도 거침이 없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색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자네가 이런 질문을 다 하다니. 심판은 오직 신의 몫이라네. 델방드는 정의로운 사람이었지. 하지만 아무리 정의로운 영혼도 신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네. 우리는 바야흐로 전쟁 중이라네. 적을 똑바로 노려보아야 해. 델방드의 좌우명처럼 ‘맞서야’ 하는 거지.”
말을 마친 또르씨 사제는 이윽고 차를 출발시켜 그곳을 떠나고, 젊은 사제는 자전거와 함께 뒤에 홀로 남습니다.
이 사제가 고뇌의 늪에서 벗어날 전망은 도무지 안 보이는 형국이 줄곧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