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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05. 2024

1. 기사가 아닌 순례자의 여정

  - 리들리 스코트, 〈킹덤 오브 헤븐〉(2005)

1. 기사가 아닌 순례자의 여정 - 리들리 스코트, 〈킹덤 오브 헤븐〉(2005)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내

   영화는 눈발이 흩날리는 을씨년스러운 풍경 속에 누워 있는 한 여인의 시체로부터 시작합니다. 사인(死因)은 자살―.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졸지에 자식과 아내를 잃고 홀로 남은 딱한 사내인 이 영화의 주인공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의 심정을 세심하게 헤아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살한 영혼은 지옥행’이라고 저주를 퍼붓는 악질 사제를 벼리던 칼로 가차 없이 쳐 죽이는 그의 날 선 분노와 깊은 절망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테니까요.     


운명이 바뀌는 순간

   때는 엄격한 신분제와 가혹한 종교적 억압이 서슬 푸르던 중세―. 바야흐로 십자군 원정의 시대입니다.

   살인범이 된 발리안은 이제 그야말로 오갈 데 없이 궁지에 몰린 신세가 된 셈입니다. 그러니, 이 젊은 영혼이 자신에게 닥쳐온 가혹한 운명에 대한 풀 길 없는 영혼의 깊은 의문에 사로잡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둔한 머리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신의 오묘한 섭리가 슬그머니 구원의 손길을 건네오는 것은 이 대목에서입니다.

   아니, 신의 섭리는 발리안의 출생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예고도 없이, 한 건장한 중년의 기사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발리안의 친아버지임을 선언하고 나섭니다. 더욱이 그는 이벨린의 영주로서 일개 대장장이는 그 앞에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는 높은 신분의 귀족이었습니다.

   당연히, 출생의 비밀이 풀리는 이 순간 발리안의 운명도 그 나아가는 방향이 바뀝니다.     


전쟁의 명분

   모든 전쟁에는 명분이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쪽에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냅니다. 그 전쟁의 정당성을 ‘널리’ 인정받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모순을 안고 있는 말입니다. 전쟁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악의 덩어리이기에 애초 정당성 따위가 있을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억지로라도 명분을 만들어서 앞에 내세우고자 애를 쓴다는 사실 자체가 전쟁의 순전한 악(惡)스러움에 대한 반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완전한 악이기에 제아무리 낯 두꺼운 절대군주라 할지라도 감히 명분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십자군 원정의 대외적인 명분은 ‘성지 탈환’이었습니다. 이교도(이슬람교도)가 차지하고 있던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는, 어쩌면 인류의 전쟁 역사상 가장 ‘거룩한’ 명분이었지요.

   물론, 지난 2005년에 선종(善終)한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일찍이 선조들이 벌인 십자군 전쟁이 잘못이었음을 공식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바 있으니, 이제 더는 십자군 전쟁이 내세웠던 저 겉치레의 거룩한 명분에 기만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명분에 온 유럽이 사로잡혀서 걷잡을 수 없이 뒤흔들렸습니다. 명실상부, 종교의 시대, 또는 종교적인 시대였지요.     


원정이냐, 순례냐?

   대장장이 발리안은 삶의 터전을 미련 없이 버리고 아버지 고프리 영주(리엄 니슨)를 따라나서기로 결심합니다. 함께 십자군 원정길에 오른 것이지요. 그렇다고 발리안이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 그가 십자군 전쟁의 명분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잃고 사제 살인범의 신세로 전락한 그의 처지에서 택할 수 있는 길이 과연 그것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이야기 구조의 인과적 필연성에 지나치게 얽매인 탓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는 ‘원정’이 아니라, ‘순례’의 길을 떠나는 셈이라고 해야 옳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성지를 향해서 먼 길을 떠난다면, 그 목적은 그 성지를 무력으로 탈환하여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신과 만나기 위해서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길 떠남은 어쨌거나 전쟁이 아니라 순례여야 할 것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쟁보다 더 끔찍하게 파기하는 길이 달리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럴진대, 수많은 인명 살상이 기본 전제가 될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목적으로 성지를 향한다고요? 성지를 향하여 간절한 신앙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의 마음에서는 그 자체부터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발리안의 십자군 원정 참가야말로 어쩌면 가장 순정한 의미의 ‘순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킹덤 오브 헤븐〉을 전쟁 영화가 아니라 종교 영화로 새겨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주장을 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이야기, 곧 발리안의 이야기는 전쟁의 맥락이 아니라, 순례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는 기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순례자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발리안은 이런 깊은 신앙적 차원의 갈급한 영혼의 질문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발리안의 행적을 이해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순례자, 영주가 되다

   발리안은, 고프리 영주 일행과 더불어 길을 떠난 직후, 살인범인 자신을 체포하러 뒤를 쫓아온 일단의 병사들과 급작스러운 전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임종을 맞게 된 아버지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일약 영주의 신분이 되지요. 발리안은 이제 대장장이가 아니라, 영주로서 십자군 원정길에 올라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이제는 관리해야 할 자기 소유의 땅이 생겼고, 다스리고 돌보아야 할 백성들이 생겼으며, 지휘해야 할 부하 기사들과 장병들이 생겼습니다. 이는 발리안에게 그것들을 지키고 이끌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을 십자군으로부터 재탈환하려는 이슬람 세력의 대표 격인 시리아의 왕 살라딘과의 일전은 발리안에게 더는 강 건너 불이 아닙니다. 자기 영토와 재물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전쟁이니까요.     


순례자의 목적, 또는 신의 섭리

   하지만 발리안의 목적은 전쟁이 아니라, 순례입니다.

   그래서 발리안은 그 모든 것에 처음부터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침공해 오는 살라딘의 대군과 맞서 싸우는 것 또한 성지를 지키기 위해서나 재물과 영토를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예루살렘의 기독교도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그래서 발리안은 눈부신 지도력을 발휘한 결사 항전 끝에 마침내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을 끝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이권을 아낌없이 버리고, 심지어 예루살렘의 왕위를 차지할 기회마저 단호히 포기하고 떠납니다.

   발리안은 협상 타결의 결과 그저 백성들의 목숨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여 예루살렘을 살라딘에게 내어준 뒤 표표히 고향을 향해 돌아갑니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가 기사가 아니라 순례자로서 예루살렘에 왔기 때문입니다. 순례자한테는 땅과 재물, 지위와 명예 따위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신의 섭리를 찾는다면, 바로 신이 발리안을 순례자로서 예루살렘에 보내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요. 따라서 이렇게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신은 기사가 아니라 순례자 한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막은 것이라고요. 이권에 눈이 어두운 유럽의 저 수많은 귀족과 전쟁광 들이 성지 탈환, 또는 성지 수호라는 미명 하에 만백성을 학살이라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는 꼴을 신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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