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23.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22. 이상한 구원의 이미지
세라피타는 영화의 첫대목에 등장할 때부터 어딘가 심상치 않게 ‘성스러운’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온전히 구원의 이미지를 체현하고 있습니다.
세라피타는 길어 온 물에 수건을 적셔 진흙으로 더럽혀진 사제의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줍니다.
세라피타가 말합니다.
“가족들은 다 집 안에 있어요. 전 가축을 우리에 넣으려고 나왔고요. 이렇게 계시면 해로워요. 제가 신부님을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처음엔 돌아가신 줄만 알았다니까요.”
사제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보려 애쓰고, 세라피타는 그러는 사제를 만류합니다.
“이런 꼴로 어딜 가시려고요?”
아직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사제한테 소녀가 가르쳐줍니다.
“토하셨어요. 뭘 잘못 드셨나요? 얼굴도 온통 엉망이시고…….”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하는 사제.
하지만 기력이 워낙 쇠진한 탓인지 위태로이 몸을 떨기만 합니다.
사제와 몇 마디 말을 더 주고받던 끝에 소녀는 문득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신부님 흉을 너무 많이 보고 다녔어요.”
일종의 고해성사입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대화가 더 깊이 있게 진행되지는 않지만, 이 짤막한 한마디는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느낌이 듭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러한 설명의 태도를 유지합니다. 신기한 것은 그 효과가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에피소드들 사이사이를 겅중겅중 건너뛰고, 연결고리를 계속 무시하거나 생략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밀도는 굉장히 높은 것입니다.
아니, 그 높은 밀도가, 에피소드들이 성기게 엮여 있음이 분명한데도,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대목에서도 신부와 소녀가 주고받는 대화의 절반쯤은 느닷없고 까닭 모를 내용이지만, 마침내 신부가 소녀의 부축과 인도를 받아 길을 나서는 장면은 구원의 중핵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이미지와 정서의 농도가 압도적입니다.
이 장면은 단지 소녀가 등불을 들고 신부를 안내하여 나란히 걷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사방이 어둠뿐인 가운데 하잘것없는 등불 하나에 의지해 허위단심 걸음을 옮겨놓는 두 사람의 애처로운 모습은 고통에 찬 암울한 삶 속에서 구원의 희망이 인간에게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것인가를 견줄 데 없이 강렬한 어조로 웅변합니다.
하지만 그 절실함과는 무관하게 현실적으로 구원의 희망은 그저 실낱같이 가냘프고 위태롭기만 하다는 것을 이 장면은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충격합니다.
마지막 순간 소녀는 또 고백합니다.
“간밤에 신부님 꿈을 꾸었어요. 하도 슬픈 표정이셔서 저는 한참 울다가 깼어요.”
소녀를 그렇게 울게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어린 소녀조차 불가해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지만, 사제는 성직자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도대체 할 수 있는, 또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제는 그 소녀보다도 더 연약하고, 스스로의 고뇌는 온전히 그것만을 감당하기에도 벅차 이 무력한 사제에게 타인의 고통을 돌아볼 여유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습니다.
둘은 마치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영원히 상대를 도울 수 없는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서로 헤어져 제 갈 길을 갑니다.
남는 것은 캄캄한 어둠뿐입니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