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수 Nov 09. 2024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_24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24.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23. 다시 샹딸

   이제 사제는 각혈(咯血)을 하기 시작하고, 죽음의 공포 속에 릴르행 기차를 타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른 새벽, 닭 우는 소리에 눈을 뜨면 사제는 다시금 희망에 차서 일기를 씁니다.


   ‘새벽이 되니 해방감이 느껴진다. 아침이여, 축복받으소서!


   그리고 ‘기도가 잘 된다’라고 덧붙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동아줄을 잡으려는 사제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예고도 없이 백작의 딸 샹딸이 찾아온 것은 사제가 선반 위의 기물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샹딸은 다짜고짜 묻습니다.

   “내일 떠나신다면서요?”

   사제가 그렇다고 대답하니, 막바로 샹딸이 이어 묻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돌아오실 건가요?”

   사제는 잠시 사이를 두고 대답합니다.

   “글쎄요.”

   “신부님 뜻에 달린 문제 아닌가요?”

   그제야 실토하는 사제.

   “전문의한테 진료받으러 릴르에 가는 겁니다.”

   그제야 낯빛이 밝아지는 샹딸. 사제가 아주 떠나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때 어디선가 오토바이 엔진음이 들려옵니다.

   샹딸이 그 소리를 가만히 듣더니, 이윽고 알겠다는 듯 말합니다.

   “사촌 오빠 올리비에의 오토바이네요.”(이 오토바이는 잠시 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제는 샹딸에게 부탁합니다.

   “당신 아버지는 싫어하시겠지만, 이왕 왔으니 좀 도와줄래요?”

   사제한테서 선반 위의 광주리를 받아 들며 또 이상한 말을 하는 샹딸.

   “신부님은 자기 생각을 숨기시네요.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지만 사제는 여유롭게 답을 피합니다.

   “판단은 사제의 몫이 아니에요.”

   “신부님도 남들처럼 눈과 귀가 있으시잖아요. 일부러 안 쓰시나요?”

   그래도 사제는 여전히 완강합니다.

   “제 눈과 귀는 그런 일 못해요.”

   “어째서요?”

   “당신은 모두에게 자기 영혼의 진실을 숨기고 있으니까요.”

   “진실이 두렵지는 않아요. 만일 의심하신다면…….”

   다시금 부정하는 사제.

   이어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가 되면 속마음을 고백하고 속죄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결국 샹딸은 경고합니다.

   “아빠는 반드시 당신을 바꿔놓을 거예요. 사람들이 전부 신부님을 술주정뱅이로 생각하고 있는 거 아세요?”

   사제는 더는 대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샹딸은 혼잣말하듯 덧붙입니다.

   “저는 인생을 이렇게 생각해요. 저는 모든 것을 원해요.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어요. 저는 비록 어리지만,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알기 전에 죽는다는 것도 알아요. 인생이 제게 실망을 안겨준다 해도 저는 악을 위해서 악을 행할 거예요.”

   샹딸의 이런 당돌한 발언에도 사제는 흔들리지 않고 준엄하게 일갈합니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흥분하는 샹딸. 이에 도전적으로 퍼붓습니다.

   “신부님께 욕을 퍼붓고 싶어요. 신부님은 제 뜻과 상관없이 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천벌도 제가 원해야 받는 거예요.”

   사제는 그러는 샹딸을 달랩니다.

   “나는 지금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겁니다.”

   “그거 다 환상 아닌가요?”

   그리고 비로소 두고두고 숨겨왔던 것을 고백합니다.

   “예전에 신부님이 엄마와 말씀 나누실 때 저는 창밖에 있었어요. 저는 기적 따위 믿지 않지만, 그 순간 엄마의 얼굴은 정말 평온해 보였어요.”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



이전 23화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_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