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25.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24. 오토바이, 청춘
사제는 마침내 짐을 챙겨 들고 길을 나섭니다. 어느 때보다 밝고 생기에 넘치는 모습이네요.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데도 걸음걸이가 힘차게 느껴질 만큼.
나날이 깊어져 가는 병세에 대한 근심보다는 역시 여행길에 나선 사람 특유의 저 홀가분하고 즐거운 기분이 앞서는 것일까요. 그래도 사제는 역시 젊은 것입니다.
하늘은 고즈넉이 높고, 한갓진 시골길 위에는 사제 혼자뿐입니다. 한가로운 여행객의 정서가 물씬 풍깁니다. 이 영화에서 처음 보는 밝은 정경이지요.
사제가 샹딸의 사촌 올리비에의 오토바이를 맞닥뜨리는 것은 이 길 위에서입니다.
물론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먼저입니다.
사제의 등 뒤에서 엔진소리가 점점 더 요란하게 커지다가 마침내 김이 빠지듯 털털거리며 멈춰 서고, 이어 사제가 뒤를 돌아보면 거기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춰 서 있습니다.
그리고 웬 젊고 건강미 넘치는 사내.
그가 사제한테 묻습니다.
“어디 가세요, 신부님?”
“기차 타러 메자르그에 갑니다.”
“오토바이 타보신 적 있으신가요? 한 번 타보시겠습니까?”
이때 별로 망설이지 않고 오토바이 뒷좌석에 몸을 얹는 사제의 표정이 놀이기구에 올라타는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해맑습니다.
이윽고 시골길을 신나게 질주하는 오토바이.
요란한 엔진소리를 뚫고 사내가 뒤에 앉은 사제한테 소리쳐 묻습니다.
“무섭지 않으세요?”
사제의 밝은 웃음.
하지만 뒤를 잇는 것은 또다시 사제의 독백입니다.
‘또래와 함께하니, 내 젊음이 기적 같았다. 갑자기 세상 모든 일이 수월한 느낌이었다. 역시 젊음은 축복이고,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이다.’
축복과 위험―.
서로 참 다른 개념이지만, 이 순간에는 어쩐지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한데, 이때 사제의 ‘위험’이라는 말은 이 순간 저한테는 어쩐지 ‘모험’의 의미로 새겨집니다.
동시에, 이쯤에서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 월터 살레스)의 ‘그(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생각나는 것도 속절없는 노릇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젊고 병약한 사제한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 나이, 그 젊음에 어울리는 티 없이 발랄한 삶의 양식인지도 모릅니다. 다소 위험한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 젊음, 청춘―.
어두운 사제복에 감싸여 속절없이 젊음을 잃어가는 사태의 부당함을 이 순간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병이라니, 종교적인 소명과는 별개로, 정말 걸맞지 않은 삶 속에 이 젊은 사제는 바야흐로 내팽개쳐져 있는 셈인지도 모릅니다. 생명력의 회복이 절실히 요구되는 국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간 “조심하세요!” 하고 소리치며 속도를 올리는 사내.
즐거워하면서도 사제는 독백을 계속합니다.
‘무어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신은 내가 이런 위험도 모르는 채 그냥 죽어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신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의 완전한 희생을 위하여…….’
‘희생’이라는 말이 ‘예감’이라는 말과 함께 보는 이의 가슴에 예사롭지 않은 무게로 얹혀 옵니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