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26.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25. 올리비에, 그리고 전쟁의 이미지
이런 식의 글쓰기, 그러니까 충분한 지면을 들여 한 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뜯어보고 읽는 식의 글쓰기는 제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기회나 여유를 누리기에는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지만요.
단 한 장면도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작품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한테는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가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어느 한 대목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그 전체가 정서적이자 미학적인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작품’이라고 정의하면 될까요.
따라서 어쩌면 이 글은 본질적으로 ‘풍부한 해설 성격의 지문을 덧붙인 시나리오, 또는 소설’의 특성을 지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컨대 글로 영화를 ‘다시 쓰거나 복기하는’ 행위인 셈이지요.
다만 이 영화처럼 원작소설이 있는 경우 그 소설을 읽으면 되지, 굳이 이런 식으로 톺아보는 식의 글쓰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글을 써보면 원작소설을 읽는 것과는 그 느낌이 상당히, 아니, 거의 완전히 다릅니다. 저한테는 이 ‘느낌’이, 이 ‘느낌’의 ‘체험’이 소중하고 즐겁고 귀합니다. 그래서 쓰는 거지요.
무엇보다도 이런 글쓰기를 통해서는 소설을 읽을 때는 보이지 않는 다른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지요. 저한테는 이게 중요합니다.
저는 소설을 영화로 옮겼을 경우 그 순간부터 그 소설과 영화는 전혀 별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작소설과 영화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지 못한지 따위에 관한 논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입장이지요.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비비언 리가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았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빅터 플레밍)를 서로 비교해서 어쩌자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래서 쓰는 것입니다.
사제와 올리비에가 기차역의 대합실에서 나누는 대화도 눈여겨 찬찬히 뜯어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사제의 짐을 매표소 앞까지 들어다 준 올리비에가 사제한테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사제.
“제가 당신 친구가 될 수 있다고요?”
“예. 신부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삼촌은 신부님을 비열하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신부님을 직접 뵙고 보니, 삼촌의 견해는 신부님의 참모습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외인부대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 모르시지요?”
“외인부대요?”
“헌병대요. 지금 신부님 모습을 거울로 보신다면…….”
또다시 사제의 어색한 미소.
“왜, 어떤데요?”
“그 검은 사제복만 벗어버리시면 우리는 서로 똑같은 모습일 겁니다. 첫눈에 알아봤지요.”
“설마 저더러 헌병이 되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왜 아니겠어요?”
“저는 사제입니다.”
“그곳에 필요한 것은 신부가 아닙니다. 예전에 제 지휘관의 당번병이 신부였어요. 나중에야 알았지만요.”
“나중이라니요?”
“그가 죽은 다음에 말입니다.”
순간 사제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다시 죽음이라는 테마와 맞닥뜨린 것입니다.
사제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죽었는데요?”
올리비에는 거침없이 답합니다.
“소시지처럼 꼴사납게 줄로 묶인 채 죽었습니다. 총알이 뱃가죽에 구멍을 뚫었지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닌데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남자는 원래 큰소리치기를 좋아하는 족속이잖아요? 당신네가 신을 모독할 때 쓰는 말을 병사들도 두세 가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신은 병사를 구원해 주지 않습니다. …… 전부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신부님은 사회적 감각이 통 없으신 분이라고 삼촌이 그러시더군요. 왜 제 삼촌 말씀을 거부하셨습니까?”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랑이 없음을 탓한 것뿐이에요.”
“우리 같은 병사들은 잘 모릅니다. 그들은 신이 자기들이 존중하지 않는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들의 법은 대가를 치른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 법은 희생의 돌을 닮았습니다. 다른 돌보다 조금 더 클 뿐이지요.”
이어 들려오는 기차 소리. 출발할 때가 된 것입니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