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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Nov 14. 2024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_28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28.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27. 친구

   루이 뒤프레티―.

   신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로, 친구입니다.

   이 친구도 일찍이 교구를 하나 맡은 적이 있는데, 병이 들어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사제의 독백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글쎄요, 동병상련의 감정이 사제를 떠밀어 이 옛 친구를 연락도 넣지 않은 채 불쑥 찾아가 만나게 한 것일까요.

   정말 이 순간 사제는 너무나 외로워 보입니다.

   사제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친구는 사제의 독백대로 ‘겉옷은 숫제 입지도 않았고, 면바지 차림에 양말 또한 안 신고’ 있는 딱한 몰골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대한 사제의 첫 관찰 내용입니다.

   동병상련을 넘어 둘 사이에는 공통된 절망적인 조락의 아우라가 너무도 완연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꾸부정한 자세로 비틀거리며 사제한테로 다가온 친구는 푹 꺼져 들어간 두 볼과 상대적으로 도드라진 광대뼈에다가 안경 쓴 퀭한 눈매가 사제와 누가 더 병약한가를 다투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남루한 행색 한가지입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그 얼굴에 오래도록 적조했던 친구한테 인사치레로 지어 보일 법한 약간의 미소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니, 이제는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을 만큼 절망으로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친구는 고백합니다.

   “넉넉히 먹어야 하는데, 도무지 입맛이 없군.”

   신앙의 열정도, 믿음의 기쁨도, 복음을 전할 사명도, 길 잃은 양들에 대한 측은지심도 이 신학교 출신의 두 젊은이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도 친구는 사제한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습니다.

   그제야 눈을 들어 친구를 바라보는 사제―.

   친구는 덧붙입니다.

   “솔직히 좀 놀랐어. 우린 별로 통하는 사이가 아니었잖아?”

   게다가 친구 또한 많은 독서를 하면서 ‘기록’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사제의 병을 제외한다면, 두 사람의 삶의 패턴은 지금 너무도 비슷한 것입니다.

   사제는 침묵하고, 친구는 그런 사제에게 계속 말을 붙입니다.

   “원하는 게 뭐야? 우리 혈관 속에는 나쁜 피가 흐르고 있어. 어떤 의사가 나더러 유년 시절부터 영양실조가 된 지성인이라고 하더군.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말 아냐? …… 운명과 맞서보고 싶었지. 일자리도 구하려 애썼고.”

   사제는 묵묵히 친구의 말을 듣기만 합니다.

   친구는 자꾸만 뭔가 논쟁을 시작하려는 기색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사제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위로임은 너무나 자명한데도 친구는 도무지 눈치가 없고, 따라서 배려도 할 줄 모릅니다.

   친구는 그저 제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독백’할 뿐이지요.

   “나를 따라 할 생각은 마. 누구한테나 어려운 시기는 있는 법이야. 그 당시 나한테 책임감이 없었더라면……. 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한 사람에 대한 책임감 말이야.”

   지금 친구가 누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는 잠시 뒤 밝혀집니다.

   “어디 한번 그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야기해 볼까? 그녀는 나의 지적인 발전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여자야. 유혹이나 열광 따위는 더더욱 아니고.”

   어찌 보면 선문답 같기도 한 이 일방적인 맹랑한 담화에서 그 옛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욕창의 고통을 받던 저 《구약성경》 〈욥기〉의 의인 욥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고통받는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위로는커녕 혹 있을지도 모르는 욥의 죄를 들추어내는 데 주력하여 욥을 더욱 괴롭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친구들은 왜 이런 고통의 순간에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를 하려 드는 것일까요. 자기들이 뭐라고요?

   사제의 얼굴에도 벌써 공연히 친구를 찾아왔다는 후회의 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합니다.

   사제는 애써 반박합니다.

   “아니, 내가 너라면, 그래서 나도 너처럼 신품성사(神品聖事:하느님의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여 성직을 주고, 그 일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수행토록 은총을 베푸는 성사)―또는 성품성사(聖品聖事)―를 깨뜨려야 했다면, 그것은 지적 발전 때문이 아니라, 여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겠어.”

   그래도 친구는 여전히 집요합니다.

   “내 생각은 너와 달라. 내가 말한 지적 발전은…….”

   결국 병약한 사제는 거기서 더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잃고 맙니다.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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