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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Nov 15. 2024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_29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29.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28. 친구의 여자

   간신히 의식을 되찾아 눈을 뜬 사제는 이제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덮인 얼굴로 간절히 부탁합니다.

   “여기서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날 어디라도 좋으니 좀 데려다줘.”

   친구는 난감합니다.

   “어쩐담?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수위한테 부탁하기도 그렇고.”

   말을 그렇게 했지만, 친구는 약이라도 사 오려고 밖으로 나갑니다.

   한데, 침대에 누워 있는 사제한테 이번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웬 남루한 몰골의 여인이 다가옵니다.

   바로 앞서 언급된 친구의 여자입니다.

   어찌 된 사정인지는 이어지는 둘 사이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신부님, 식사를 통 못하시네요. 그이는 좀 미친 게 아닌가 싶어요. 약국까지 뛰어갈 생각인가 봐요. 여기가 너무 지저분해서 속으로 저를 욕하셨지요? 새벽 5시에 일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게다가 저도 그리 건강한 편은 아니거든요.”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가정부예요. 이 마을, 저 마을로 옮겨 다녀야 한다는 게 좀 힘들죠.”

   “그 친구 사업은 어떻습니까?”

   “그럭저럭요. 단지 타자기를 빌려야 한다는 게……. 그는 외출을 거의 안 하고 지내요.”

   “두 사람, 결혼은 하셨나요?”

   “아직요. 제가 원하질 않았거든요.”

   “왜요?”

   “그이의 건강 때문에요. 저는 그이가 회복되리라 믿었거든요. 그러면 언젠가는 다시 성직을 시작할 텐데, 그때 제가 걸림돌이 되면 안 되잖아요.”

   “그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이도 제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왜 제게 그런 걸 물어보시죠?”

   사제는 잠깐 사이를 두고 말합니다.

   “친구니까요.”

   그러니까 친구는 이 여자 때문에 사제직을 포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발전을 위해서라고 친구는 강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니면, 착각하고 있는 것이거나요. 어쩌면 그저 속절없는 변명일까요?

   이제, 나갔던 친구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자는 일어나 그쪽으로 가고, 친구의 목소리가 먼저 사제한테로 다가옵니다.

   “약사가 날 비웃더라고. 기절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서워.”

   사제는 침대맡으로 온 친구의 손을 간절히 붙잡으며 말합니다.

   “봐봐. 나하고 얘기 좀 해. 시간이 별로 없어.”

   “나하고? 무슨 말? 누구에 대해서?”

   사제는 친구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합니다.

   “너에 대해서.”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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