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30.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29. 최후
영화가 보여주는 사제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습니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맥없고 흐트러진 글씨체로 뭐라고 일기를 쓰다가 펜과 종이를 힘없이 떨어뜨리고는 멍하니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의 클로즈업―.
영화는 사제의 최후를 또르씨 사제의 독백으로 대신합니다.
독백하는 목소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사제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독백은 전부 옮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도 더욱 상세히 사제의 최후를 묘사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면에는 독백이 모두 끝날 때까지 십자가의 검은 실루엣, 또는 그림자만이 돌올하게 버티고 있을 따름입니다.
‘4시쯤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사제의 방으로 갔다. 그는 의식을 잃은 채 맨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를 안아다 침대 위에 눕히자, 피를 많이 흘렸다. 물론, 잠시 뒤 출혈은 멈췄다. 의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굵은 땀방울이 연신 비어져 나왔고, 그의 눈은 온통 번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맥박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었다. 그가 묵주를 달라는 뜻을 보였다. 그의 바지에서 묵주를 꺼내 건네주었더니, 그는 그걸 받아 제 가슴 위에 고이 얹었다. 그러고는 거의 알아듣기 힘든 작은 목소리로 용서해 달라고 고백했다. 비로소 그의 얼굴이 평온해졌고, 미소를 짓기까지 하였다. 인간적으로든 우정으로든, 나는 내 할 도리를 다해야 했다. 바야흐로 죽어가는 불행한 동료한테 희망을 불어넣어 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가 내 말을 알아듣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는 자기 손을 내 손 위에 살며시 포갰다. 그리고 내 귀를 자기 입에 가까이 대어주기를 눈빛으로 바랐다. 그러더니 그는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도 매우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요?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숨을 거두었다.’
사제는 끝까지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골 사제인 것이지요.
아마도 그렇듯 한갓 이름조차 없는 어느 시골 사제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젊은 사제의 ‘예정된’ 죽음은 이상하게 보는 이의 가슴을 후비고 듭니다.
위안이 있다면 그래도 사제가 최후의 순간 ‘은총’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 그러니까 병과 죽음조차도, 또 적대감과 외면조차도 결국은 신께서 주시는 은총의 서로 다른 사태들이라는 사제의 인식은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위안이 아닐까요.
이 인식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는 가열한 고뇌의 끝에서 마침내 가까스로 얻은 인식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제한테 이 인식(認識)은 동시에 분명 안식(安息)이 아니었을까요. *
※ 이 글의 대사와 독백 부분은 자막을 바탕으로 제가 이 글에 어울리는 느낌으로 손질한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