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동규, 《악어를 조심하라고?》
P30. 잠시 천상과 지상을 잊을 것이다 – 황동규, 《악어를 조심하라고?》(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53)
시인은
다짐합니다.
‘잠시 천상과 지상을 잊을 것이다’라고요.
살다 보면
정말로
지상뿐만 아니라,
천상도
잠시
잊고 싶은 순간이
누구한테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오죽하면
천상조차도
잊고 싶을까요.
이 지상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울 때
사람이
천상을 꿈꾸는 것은
참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오로지
천상 밖에는
꿈꿀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말입니다.
하나님,
이제 그만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서
말이지요.
한데, 시인은
그 천상조차도
잊고 싶다는
것입니다.
본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힘든 계절 하나를 예서 나고 싶다’라고
말했던 시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힘든 계절’을
이곳에서
나고 싶다고 할 만큼
시인은 이곳을
사랑했던 것이지요.
그런 시인이었기에
심지어
‘살아 있는 것이 겁없이 황홀해’라고
‘겁없이’ 고백했던
것일 겁니다.
‘자갈 위로 눈내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길 하나 없는 이 길의 편안함’을
노래했던
시인이었거든요.
심지어
‘저녁에 약속한 친구가 벌써 그리워진다’던
시인이었거든요.
그 친구와 함께
‘싸락눈 내릴 땐 같이 맞고 걸으면 되지’라고
했던
시인이었거든요.
그 시인이
말합니다.
아니,
청합니다.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바람과 놀게 해다오’라고요.
누구입니까?
무엇입니까?
도대체 누가,
무엇이
시인에게
‘잠시 천상과 지상을’
아울러
‘잊을 것이다’라고
슬피
토로하게
한 것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