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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Dec 11. 2024

P30. 잠시 천상과 지상을 잊을 것이다

  - 황동규, 《악어를 조심하라고?》

P30. 잠시 천상과 지상을 잊을 것이다 – 황동규, 《악어를 조심하라고?》(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53)


   시인은

   다짐합니다.

   ‘잠시 천상과 지상을 잊을 것이다’라고요.

   살다 보면

   정말로

   지상뿐만 아니라,

   천상도

   잠시

   잊고 싶은 순간이

   누구한테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오죽하면

   천상조차도

   잊고 싶을까요.

   이 지상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울 때

   사람이

   천상을 꿈꾸는 것은

   참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오로지

   천상 밖에는

   꿈꿀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말입니다.

   하나님,

   이제 그만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서

   말이지요.

   한데, 시인은

   그 천상조차도

   잊고 싶다는

   것입니다.

   본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힘든 계절 하나를 예서 나고 싶다’라고

   말했던 시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힘든 계절’을

   이곳에서

   나고 싶다고 할 만큼

   시인은 이곳을

   사랑했던 것이지요.

   그런 시인이었기에

   심지어

   ‘살아 있는 것이 겁없이 황홀해’라고

   ‘겁없이’ 고백했던

   것일 겁니다.

   ‘자갈 위로 눈내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길 하나 없는 이 길의 편안함’을

   노래했던

   시인이었거든요.

   심지어

   ‘저녁에 약속한 친구가 벌써 그리워진다’던

   시인이었거든요.

   그 친구와 함께

   ‘싸락눈 내릴 땐 같이 맞고 걸으면 되지’라고

   했던

   시인이었거든요.

   그 시인이

   말합니다.

   아니,

   청합니다.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바람과 놀게 해다오’라고요.

   누구입니까?

   무엇입니까?

   도대체 누가,

   무엇이

   시인에게

   ‘잠시 천상과 지상을

   아울러

   ‘잊을 것이다’라고

   슬피

   토로하게

   한 것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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