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랭크 오즈, 〈Mr. 후아유〉
C46. 장례식, 그 코미디의 현장 – 프랭크 오즈, 〈Mr. 후아유〉(2007)
유별난 두 가지 장례식
제게는 두 가지 장례식의 이미지가 언제나 선연합니다. 하나는 〈대부〉(1972,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그것이고, 또 하나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허진호)의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 둘 모두는 장례식 고유의 풍경과는 어지간히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고 장례식에는 반드시 ‘고유의’ 풍경이라고 할 만한 어떤 전형 또는 정형이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장례식은 어디까지나 장례식 나름입니다. 나라별로 다르고, 지역별로 다르고, 종교별로 다르고, 가문별로 다르고, 상황별로 다릅니다. 심지어 시대별로도 다르지요. 다만 그것이 죽음을 처리하는 전례(典禮)라는 점만이 공통된 사실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장례식이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바로 이 전형성에 비추어 〈대부〉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장례식은 제게 유별난 것이라는 말을 지금 저는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장례식 아닌 장례식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할까요?
〈대부〉의 경우는 비토 콜레오네(마론 브란도)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의 경우는 머잖은 죽음을 앞둔 정원(한석규)의 앞당긴 장례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요컨대, 〈대부〉의 장례식은 죽은 대부의 장례식을 빙자하여 새로운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가 조직의 권력을 승계하는 과정의 본격적인 서막에 지나지 않고, 〈8월의 크리스마스〉의 장례식은 한석규가 그 장례식을 통하여 머잖아 있게 될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앞당겨 치르는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장례식 장면들 앞에서 정작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장례식과는 다른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는 셈입니다.
숙연하지 않은 장례식
〈Mr. 후아유〉의 장례식도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장례식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어지간히 다르다는 점에서 이 목록에 추가될 자격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장례식은 숙연하지가 않다는 점에서 독보적입니다.
아니, 숙연한 지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러닝 타임 전체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는 장례식 동안 숙연한 지점은 극히 짧은 한순간일 뿐입니다. 이 영화 속 장례식은 실은 장례식이 아니라, 이 장례식을 빙자하여 한 자리에 모인 한 가족의 이면사를 고루 드러내는 구실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는 뜻입니다.
드러냄과 봉합하기
이런 계열의 장례식이라면 우리는 이미 〈학생부군신위〉(1996, 박철수)나 〈축제〉(1996, 임권택)를 통하여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편의 영화 속 장례식은 모두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부산스럽게 드러내는 동시에 봉합하는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Mr. 후아유〉의 장례식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드러냄과 봉합의 방식이 다른 것이지요.
〈학생부군신위〉와 〈축제〉의 장례식은 그 결말이 이미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예정된 결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영화가 시작할 무렵부터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장례식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 장례식이 어떤 결말로 치달을 것인지를 우리는 생활과 관습의 차원에서 ‘경험적으로’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의외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 두 편의 영화는 그리 높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지 않겠나, 싶습니다.
바로 이 의외성이 핵심입니다.
돋보이는 의외성
〈Mr. 후아유〉는 바로 이 의외성에서 단연 돋보입니다.
영화는 이제 막 시작하려는 장례식에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의 관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엉뚱한 의외성의 목록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우리의 기대를 줄기차게 배반합니다. 이 점에서 영화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관객인 우리의 기대에 값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족의 숨은 사연들과 사정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이 점점 더 고조되고 첨예해지다가 마침내 그 갈등이 폭발하여 절정에 이른 다음 신속하게 수습 국면에 이르는 식의 스토리 자체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 마지막 국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일종의 좌충우돌식 코미디의 양상으로 펼쳐진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엄숙해야 할 장례식이 코미디의 현장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장례식을 코디미의 현장으로 버무려내는 프랭크 오즈 감독의 솜씨는 유니크합니다.
무엇보다도 거기에 두 가지 종류의 멜로 설정이 일종의 서브플롯으로 깔려 있다는 것은 이 영화를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구실을 하는 강점이기도 합니다.
이 풍성하고 다채로운 내용물들이 우여곡절 끝에 코미디다우면서도 동시에 드라마로서의 품격도 적절히 유지한 채로 수습되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관객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보는 듯한 감흥에 사로잡힙니다.
조화로운 연기 호흡
무엇보다도 단 한 명의 스타급 배우도 없이 오로지 조연급 배우들로만 이루어진 이 영화의 배역 구성은 프랭크 오즈 감독의 노련한 연출력에 힘입어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어쩌면 가장 결정적인 강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각자의 개성이 조화롭게 발휘된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 호흡은 이 영화의 다소 황당하고 코미디스러운 설정을 매우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구실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관객이 설득을 당했다면 영화는 성공한 셈이지요. 당시 로카르노 영화제 관객상 수상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작품으로 우리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례식 이미지 하나를 얻은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