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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13. 2024

5. 소년, 자연 속에서 성장하다

  - 게리 폴슨, 《손도끼》

5. 소년, 자연 속에서 성장하다 / 《손도끼》 - 게리 폴슨 지음, 김민석 옮김, 사계절

열세 살의 단독 비행

   《손도끼》는 미국에서 아동(어린이)문학을 대상으로 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뉴베리상 수상작으로, 일종의 청소년 소설입니다. 그래서 주인공도 열세 살 난 소년 브라이언입니다.

   어느 날 브라이언은 단 한 명의 승객으로, 엄마가 선물로 준 자그마한 손도끼 하나를 허리춤에 차고 소형 비행기(또는 경비행기)를 탑니다.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실어 나르는 대형 항공기를 타는 것과, 조종사까지 포함해도 기껏해야 서너 명이 탑승 정원인 소형 비행기를 타는 것은 같은 비행기라도 그 기분은 전혀 다를 것입니다.

   소형 비행기는 땅으로부터 많이 떨어지지 않은 저공비행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기체를 움직이는 곡예비행도 할 수 있으며, 대형 항공기는 갈 수 없는 다소 협소한 곳에서도 비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잘만 하면 롤로 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짜릿한 기분을 만끽할 수도 있는 즐거운 기회지요. 아닌 게 아니라, 어린 소년에게는 신나는 모험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 비행은 소년에게 첫 경험입니다. 그야말로 가슴 설레는 순간 아니겠습니까.


소년의 비밀

   하지만 소년은 비행공포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리만큼 시무룩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은 지금 자기 혼자만 아는 한 가지 고민거리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그것을 가리켜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밀은 소년의 부모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 달 전에 두 분이 이혼하셨거든요.

   법원은 소년이 엄마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법이 규정하고 있는 ‘방문권’을 지키기 위해 방학 동안에는 아빠한테 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소년은 바로 그 방학을 맞아 비행기를 타고 아빠한테로 가는 길입니다. 부모님의 이혼 뒤 첫 방문이지요.

   소년의 아빠는 석유시추업자입니다. 소형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바로 그 비행기를 얻어 탄 것입니다.

   하지만 소년의 고민거리는 부모님의 이혼이 아닙니다. 소년은 짧지 않은 재판 과정을 보고 겪으면서 그 문제에는 이제 어지간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비밀’입니다.

   소년은 얼마 전 엄마가 낯선 남자와 다정히 함께 있는 모습을 몰래 목격한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아빠한테 털어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소년은 지금 고민입니다.

   여기까지만이라면 《손도끼》는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어린 소년이 겪는 이런저런 고충의 내용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웬일입니까. 이야기는 곧 이 소년이 탄 비행기가 난데없이 조종사가 의식을 잃으면서 추락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추락 뒤의 생존

   미국은 땅이 넓습니다. 아직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가 많습니다. 한참이나 항로를 이탈한 비행기는 마침내 그런 곳에 떨어집니다. 다행히 비행기가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처박히면서 충격이 완화된 덕분에 소년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집니다.

   소년이 정신을 차려보니, 비행기는 조종사와 함께 호수에 가라앉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숲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게다가 추락할 때의 충격으로 온몸이 쑤시고 아픕니다. 이제 소년은 도대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가야 합니다.

   영화로 치면 톰 행크스가 무인도에서 홀로 생존하는 과정을 그린 로버트 저메키스의 〈캐스트 어웨이〉(2000) 같은 이야기인 셈입니다. 하지만 톰 행크스는 인생 경험이 풍부한 성인(成人)이고, 브라이언은 아직 어려서 몸과 마음이 덜 여문 미성년자(未成年者)입니다. 당연히 소년 쪽이 훨씬 더 어렵고 위태로운 처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게다가 소년이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선물로 준 예의 손도끼 하나뿐입니다. 여기서부터 《손도끼》는 소년 브라이언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손도끼 자체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손도끼는 지금 소년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문명의 이기요, 쓸 만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자각

   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그만큼 자연에서 멀어지게 하였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이 자연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기술을 잊어버렸다는 뜻도 됩니다.

   돈만 있으면 먹고 살 걱정이 없고, 과학기술문명이 자연에서라면 겪지 않을 수 없는 온갖 난관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줍니다. 하지만 이런 문명이라는 온실 속에서 지내는 동안 인간은 나날이 자꾸 약해져만 갑니다. 아니, 퇴화해 간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 실상을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낱낱이 목도할 수 있습니다.

   환경론의 차원에서 문명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아직 부모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 속에서 어린 소년이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가혹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하고 한탄만 하며 자기연민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다는 것을 소년은 금세 알아차립니다. 허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장 먹을 일이 걱정입니다. 집에서야 엄마가 마련해주는 음식을 식탁에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돈이 있다면 식당이나 마트나 편의점에 가서 원하는 걸 사 먹으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 소년의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울창한 숲과 호수뿐입니다. 어떻게 먹을 것을 조달해야 할지 소년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제부터 전개되는 것은 이 소년이 문명의 때를 벗고 스스로 야만적인 자연에 자신을 적응시키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생존 매뉴얼 교육

   동시에 이것은 하나의 모험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누구라도 그런 처지에 놓이면 꼭 필요할 생존 매뉴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 이야기가 문명이 꼭 헛된 것만은 아님을 이 소년의 생각과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통하여 차근차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소년이 받아왔던 ‘교육’이 초점입니다.

   소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웠던 모든 것을 기운껏 총동원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책에서 읽은 것, 영화에서 본 것, TV에서 본 것, 주변 사람들한테서 얻어들은 것 따위를 낱낱이 기억 속에 되새기면서 생존에 활용합니다.

   그 배움의 목록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문명이 결코 자연과 동떨어진 것만은 아니며, 결국은 그 또한 자연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시나브로 하나씩 하나씩 알 수 있게 됩니다. 살아 있는 교육이 학교와는 무관하게 삶 속에서 이런저런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자각은 참 신기하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입니다.

   곧, 이 모든 것이 소년의 성장에 이렇게 저렇게 이바지했던, 또 이바지하는, 그리고 장차 이바지할 요소들입니다.


성장의 두 가지 차원

   눈여겨볼 것은 소년의 성장이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기술의 차원입니다.

   소년이 불을 만들어 내는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소년은 불을 피우려고 온갖 방법으로 애를 쓰다가 마침내 손도끼를 바위에 내리쳐 불꽃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도구에 대한 자각의 순간입니다.

   이처럼 성냥도 라이터도 없는 상태에서 불을 만들어 내려고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깨달아 가는 소년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과학자나 탐험가의 그것을 방불케 합니다.

   소년이 불을 피워내려고 애쓰다가 불꽃만으로도 쉽게 타오르는 소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무껍질을 잘게 찢고, 또 나아가 산소라는 연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불꽃이 나무껍질에 옮겨붙었을 때 얼른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자칫 꺼지려던 불꽃을 살려내는 순간은 그야말로 가슴 벅찬 장면입니다.

   한마디로, 그 모두가 한 인간이 자연계와 온몸으로 부딪치며 그 원리를 깨우쳐 가는 과정, 바로 그것입니다.

   또 하나는 실존의 차원입니다.

   숲속에서 영위하는 삶은 하루하루가 먹을 것을 구하는 투쟁입니다. 어쩌다 자칫 다리를 삐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먹을 것을 구하러 갈 수도 없고, 그렇게 며칠만 지나면 그대로 굶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먹을 것을 저장해 두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소년은 ‘숲속의 모든 생명체를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사무치게 깨닫습니다. 바로 ‘먹이가 전부’라는 것입니다. 곤충도, 물고기도, 곰과 같은 짐승들도 늘 먹이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바로 먹이라는 자각,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어야만 한다는 자각―.

   요즘과 같은 경제불황, 혹은 경제난 시대에 소년의 그런 마땅한 자각은 몹시도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성장의 결과

   다행히 소년은 두 달 만에 구조됩니다.

   한데, 이 구조는 소년이 마침내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은 비행기에서 비상식량과 도구들을 되찾아 훨씬 더 풍족한 생활을 시작하려는 즈음에 이루어져 못내 아쉽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소년은 어느덧 훌륭히 자연에 적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손도끼》는 한 어린 소년의 한갓 일시적이고 꿈만 같은 모험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비밀’에 관한 것입니다.

   소년이 살아 돌아온 감격에 부모가 화해하고 재결합하여 다시금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식의 안일한 후일담이 아닙니다. 부모는 여전히 이혼한 상태고, 엄마는 여전히 다른 남자와 가까이 지냅니다.

   소년은 그 ‘비밀’을 아빠한테 털어놓지 않기로 합니다. 부모의 삶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의 표명인 셈입니다. 어느덧 그만큼 소년은 성숙해진 것입니다. 이 어린이다우면서도 ‘어른스러운’ 결말이 참 귀하고 소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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