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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08. 2024

4. 문명은 최악의 직업 위에서 이루어졌다

  - 토니 로빈슨 & 데이비드 윌콕, 《불량직업 잔혹사》

4. 문명은 최악의 직업 위에서 이루어졌다 / 《불량직업 잔혹사》 - 토니 로빈슨 & 데이비드 윌콕 지음, 신두석 옮김, 한숲

험한 직업의 종사자셨던 예수님

    힘없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예수님께서 한없이 낮은 곳인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먼저 두드러지게 강조하곤 합니다.

   한데, 이에 견주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아버지 요셉 밑에서 목수 일을 하셨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전기톱이나 네일 건(nail gun:공기압을 이용해서 손쉽게 못을 박는 권총 모양의 기구) 같은 기계나 기구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 2천 년 전에 나무를 베어 깎고 다듬어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정은 보지 않고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지금의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 만큼 고되고 험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필경 숱하게 다치셨을 것입니다. 그 탓에 예수님의 손은 아마 굳은살이 곳곳에 박인 상처투성이의 보기 흉한 거친 손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 사실이 참 귀하게 여겨집니다.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아끼셨던 예수님의 그 한없는 긍휼의 마음이 허위나 위선이 아니라 진짜배기였음을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이런 까닭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그렇듯 낮은 곳에서 험한 직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더욱 깊이 이해하시고, 또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불량스러운 직업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

   이 책 《불량직업 잔혹사》는 바로 그와 같은 험한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류의 문명은 바로 그런 고약한 직업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장이자 주제입니다.

   이 책의 부제가 ‘문명을 만든 밑바닥 직업의 역사’인 것도 그런 까닭에서일 테고, ‘역사상 최악의 직업들(The Worst Jobs in History)’이라는 이 책의 원제 또한 바로 그런 생각의 바탕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의 ‘Worst’를 ‘불량’으로, ‘History’를 ‘잔혹사’라고 옮긴 의도도 아마 그 험함과 고약함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넘겨짚어 봅니다.

   영국인인 이 책의 두 저자는, 제목에 ‘역사’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도 미루어 알 수 있듯, 영국 역사의 시대 구분법에 기초하여 각 시대 최악의 불량직업들을 차례로 두루 살펴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로마의 침공으로 문명의 세례를 받기 시작한 첫 번째 밀레니엄의 벽두인 로만브리튼 시대부터, 게르만이 들어와 브리튼인들이 변방으로 밀려난 앵글로색슨 시대, 백년전쟁을 치렀으며 흑사병이 창궐했던 봉건주의 시대인 중세, 절대왕정 시대였던 튜더왕조와 청교도혁명이 있었던 스튜어트왕조, 7년 전쟁의 승리로 전 세계에 걸쳐 넓은 식민지영토를 손에 넣었던 조지왕조를 거쳐, 차티스트운동과 같은 대규모 사회운동이 일어난 왕정몰락기의 빅토리아왕조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가 어떤 ‘불량직업’들을 발판으로 삼아 문명의 역사를 이루어왔는지를 통시적으로 더듬어볼 수 있습니다.     


갑옷 담당 종자, 또는 극한 직업

   우선,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불량직업은 저자가 중세의 첫 번째 최악의 직업으로 내세운 ‘갑옷 담당 종자’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세는 종교적 권위가 서슬 푸르던 암흑의 시대였지만, 아더 왕의 원탁의 기사로 유명한 기사도의 시대이기도 하였지요.

   눈부신 은빛 갑옷 차림에 잘생긴 백마를 타고 긴 창을 휘두르며 종횡무진 적을 무찌르는 기사의 멋진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찹니다. ‘기사문학’이 당당한 하나의 장르로서 활짝 꽃을 피운 것도 다 까닭이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바로 그 기사의 멋진 모습이 그 뒤에 숨어서 보이지 않게 헌신한 기사 담당 종자의 고단한 수고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기사 담당 종자란 일종의 몸종입니다. 나이 어린 소년들이 주로 맡았습니다.

   한데, 놀랍게도 저자는 그들의 삶을 한마디로 ‘똥 같은, 똥과 함께하는 삶’이라고 가차 없이 규정합니다. 심지어 ‘정말이다’라고 덧붙여 강조해 두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아왔던 속전속결의 스펙터클 한 전투 장면들과는 달리, 그 시대의 전투는 해가 뜨면서 시작하여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줄곧 이어졌습니다. 온종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계속했다는 뜻입니다.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짧은 격전, 포도주 한 잔과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는 짧은 휴식, 다시 격전.’

   이것이 그 당시 전투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리 용변이 급해도 화장실 다녀올 여유가 있었을 턱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어느 쪽에서 적의 칼날과 화살이 내 몸을 파고들어 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더욱이 기사들은 갑옷 차림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끔찍합니다.

   모두 합쳐 스물네 가지 장구(裝具)로 이루어진 기사들의 갑옷은 무게가 무려 28킬로그램이나 나갔습니다. 이 탓에 몸종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마음대로 입거나 벗을 수도 없었지요.

   그러니, 아무리 급하다고 한들 무슨 수로 한창 전투 중에 뒤로 물러나 갑옷을 벗고 한가롭게 용변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나오려는 용변을 꾹 참고 몸을 움직인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결국 전투 중의 기사들은 갑옷을 입고 말 위에 올라탄 채로 그냥 용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전투를 주로 더운 여름에 치렀습니다. 땀범벅에 크고 작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 그리고 용변까지―.

   화려한 은빛 갑옷 속 기사들의 몸은 겉모양과는 달리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던 셈입니다. 온갖 악취와 비위생의 도가니,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전투를 유리하게 마무리하고 살아서 돌아오면 다행이었습니다. 기사들은 적어도 다음날의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안락하게 쉴 수 있었으니까요. 이 또한 바로 몸종들, 갑옷 담당 종자들의 수고 덕분이었지요.

   종자들은 주인이 돌아오면 그의 갑옷을 벗겨 다음날의 출전에 대비해서 깨끗하게 손질해 놓아야 했습니다. 물로 씻었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당시는 오늘날 우리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만큼 물이 귀했습니다. 마실 물도 부족한 터에 갑옷 씻는 데 물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일이었지요. 주된 재료는 모래였고, 거기에 식초와 오줌을 섞어 갑옷을 반짝반짝 윤이 날 때까지 문질러 닦았던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종자들은 말도 돌보아야 했고, 기사가 집에 있을 때와 거의 다름없이 적절한 에티켓을 갖추어 주인이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세심히 준비하여 시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유사시에는 전투에도 참가해야 했습니다. 애초 전투병도 아니고, 갑옷도 없는 그 어린 종자들이 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는 기사들의 멋진 이미지란 결국 그런 불량직업 종사자들, 그 나이 어린 소년들 덕분이었던 셈입니다.     


역사상 최악의 불량직업, 또는 무두장이

   이처럼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불량직업은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싶게 하나같이 끔찍합니다. 그런 직업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끔찍한데, 그런 직업들이 아니고서는 인류의 문명이 오늘에 이를 수 없었다는 깨달음은 더욱 끔찍합니다.

   구토물 수거인, 거머리잡이, 사형 집행인, 변기 담당관, 분뇨 수거인, 서캐잡이, 흑사병 매장인, 시체 도굴꾼, 카스트라토, 쥐잡이꾼, 인간 분쇄기, 뼈 수거인, 하수관 수색꾼, 진흙탕 수색꾼, 개똥 수거인…….

   이런 직업들은 이름만 들어도 더는 내려갈 곳 없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이루는, 명실상부 최악의 불량한 직업들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불량직업을 통틀어서 저자가 꼽은 역사상 최고 최악의 불량직업은 바로 빅토리아왕조 시대에 가죽을 손질하던 무두장이입니다.

   저자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어조로 ‘최악의 직업 국제선수권대회’라는 것이 열린다면 우승컵은 단연 그들의 차지일 것이라고 비꼬듯 말합니다. 우스꽝스럽기에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하는 말입니다.

   무두장이는 불량직업의 일반적인 공통점인 고됨, 더러움, 낮은 보수, 위험, 지루함 따위의 특성들을 빠짐없이 고루 갖추고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공할 만한 악취를 견뎌야 했기에 무두장이에게는 ‘코가 없을 것’이라는 자격요건이 필요했다고까지 저자는 말합니다.

   그런 불량직업에 종사한 선조들 덕에 우리가 오늘 이런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이 깨달음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마지막 전언 앞에 우리는 그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시대에 걸친 최악의 직업들을 담당한 그 모든 얼굴 없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 세계를 형성시킨 주인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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