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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May 06. 2024

2. 작은 소녀, 커다란 발로 씩씩하게 서다

  - 렌세이 나미오카, 《큰 발 중국 아가씨》

2. 작은 소녀, 커다란 발로 씩씩하게 서다 / 《큰 발 중국 아가씨》 - 렌세이 나미오카 지음, 최인자 옮김, 달리

아직도 남아 있는 악습(惡習)의 충격

   언젠가, 진작에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전족 풍습이 중국 남부 윈난성의 류이촌이라는 곳에서 아직까지 그 마지막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 고약한 구시대의 유물이 이 21세기 대명천지에까지?!

   더욱이 실제로 전족을 한 어느 할머니의 발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은 그걸 보는 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양보해도 그것은 이미 발이라고는 도저히 입에 올릴 수조차 없는 기괴한 모양새였습니다.

   ‘묶을 전(纏)’자와 ‘발 족(足)’자로 이루어진 단어인 ‘전족(纏足)’이란 문자 그대로 ‘발을 묶는’ 것입니다.

   일설에, 중국 당나라 말기인 9세기 무렵 황제의 무희가 발을 묶고 춤을 추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다른 무희들도 그것을 흉내 내어 발을 묶기 시작했고, 이것이 차츰 궁중의 다른 여인들과 일반 귀족 집안 여인들한테까지 퍼져나가 마침내는 하나의 풍습으로 정착되었다고 하는 전족―.

   중국 4대 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서시(西施)가 평소 속이 좋지 않아 곧잘 낯을 찡그렸는데, 그 모습마저 너무나 아름다워 동시(東施)라는 여인이 그걸 따라서 자신도 곧잘 낯을 찡그리곤 하였던 탓에 빈축(嚬蹙)을 샀다는 고사(故事)가 있지요? 당시 중국에서는 그런 식의 전파(傳播)와 모방(模倣)이 드문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세 치의 황금 연꽃

   하지만 그저 발을 묶었다고만 얘기해서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상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여섯 살이 채 되지도 않은 어린 여자아이의 두 발을 헝겊으로 묶습니다. 이때 그저 묶는 것이 아니라,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발가락을 모두 발바닥 쪽으로 최대한 가깝게 접어서 절대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게 묶은 발의 길이는 10센티미터 정도가 이상적인 크기였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발 길이를 그 정도 크기로 ‘영원히’ 억제하는 것이지요. 이를 가리켜 ‘세 치의 황금 연꽃(三寸金蓮)’이라고 사뭇 멋스럽게(!) 부른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사람의 발 모양은, 얼굴 생김새가 그렇듯, 천차만별입니다. 얇아서 그런대로 잘 접힌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조금이라도 두껍거나 굵은 발이라면 인위적으로 발등뼈를 부러뜨리거나 근육을 파열시키지 않고는 제대로 접을 수 없습니다.

   설사 그러지 않고 무사히(!) 접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창 자라는 어린아이의 발이니, 시간이 지나면서 뼈가 보기 흉하게 변형되는 사태를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족을 한 성인 여성의 발은 최종적으로, 아무리 길어도 15센티미터를 넘기 힘든, 끝이 뾰족한 하이힐 모양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전족을 하는 시기가 되면, 어린 또래 여자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온 장안(長安)에 울려 퍼졌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 걸 보면, 그게 이만저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당연하지요. 어찌 그러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결혼의 자격 요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변형의 결과가 여성의 삶 전체에 끼치는 몹쓸 영향입니다. 간단하게만 살펴보아도 그 고약함이 대번에 드러납니다.

   무엇보다도 전족을 받은 여자는 그때부터 일평생 바로 서 있을 수도, 제대로 걸을 수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위태롭게, 흡사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서서 뒤뚱뒤뚱 오리 모양의 팔자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전족을 받은 여성은 되도록 걷지 않는 편이 낫고, 걷더라도 살금살금 기어가듯 한없이 조신하게 걸어야 합니다. 뛰기는커녕 빨리 걸을 수도 없으니, 일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에 몹시 취약합니다. 속절없이 남편을 포함하여 타인(他人)에 신체적으로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건강관리에도 문제가 많지요.

   하지만 이 모든 비정상이 당시에는 신분을 상징하는 표시이기도 하였습니다. 전족을 받았다는 것은 굳이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처지라는 뜻이기도 하였으니까요.

   당시 귀족 집안에서는 전족을 받지 않은 여성은 아예 며느리로 받아들이지조차 않았다고 하는군요. 전족은 그 당시 신분 있는 여성이 결혼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격요건이었던 셈입니다.     


전족을 거부한 발이 큰 여자의 이야기

   제목만 보고도 한눈에 전족 관련 이야기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이 책 《큰 발 중국 아가씨》는 한 어린 중국 소녀가 바로 그 전족 풍습이 아직은 서슬 푸른 기세를 유지하고 있던 시절, 거기에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마침내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저자인 렌세이 나미오카는 중국 베이징 태생으로,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이민 1세대 작가입니다. 책 첫머리의 ‘헌사(獻詞)’에서 저자는 이 책을 자기 어머니에게 바치고 있는데, 저자는 그 어머니를 가리켜 ‘전족을 거부한 발이 큰 여자’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바로 그 어머니의 이야기가 바탕입니다.

   1911년의 어느 날, 다섯 살 난 활달하고 당찬 소녀 아이린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기보다 두 살 위의 남자아이와 선을 봅니다. 집안 어른들끼리 뜻을 모아 아직은 어린 자식들의 장래를 미리 결정해 두려는 것이었지요.     


처참한 살덩어리

   문제는 전족입니다. 당시 여성은 결혼에 앞서 먼저 전족부터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할 만큼 아이린은 이제 나이가 찬 것입니다. 남자의 어머니도 아이린 쪽에 강하게 전족을 요구해 옵니다. 곧, 전족은 정혼의 전제조건입니다.

   실제로 위로 아이린의 두 언니는 이미 전족을 받았습니다. 아직은 그게 무엇인지 또렷이 알 턱이 없는 아이린은 둘째 언니에게 전족이 뭐냐고 묻습니다. 언니는 얼굴을 찡그리며 동생한테 자기 발을 보여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그 언니의 발을 두고 저자는 아이린의 입을 빌려 이렇게 묘사합니다. ‘언니의 다리 끝에 달린 처참한 살덩어리.’ 거칠 것 없이 자유롭게 지내던 아이린이 그 끔찍한 전족과 그것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결혼을 달가워할 턱이 없습니다. 이제 전족을 거부하는 아이린의 눈물겨운 저항과 투쟁이 시작됩니다.     


뜻밖의 시련

   다행히도 아이린의 아버지는 새로이 밀려 들어오는 서구 문물에 눈을 뜬 ‘개화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내는 물론이고, 완고한 형님을 비롯한 온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딸의 전족을 막고, 나아가 딸을 서양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에 보내 개화된 교육을 받도록 조치하여 줍니다.

   위로 두 딸은 전족을 받도록 하는 수 없이 내버려 두어야 했지만, 셋째 딸만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족을 받지 않으면 전통적인 중국 여인의 삶은 포기해야만 합니다. 아이린은 그래도 좋다는 각오로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나 인간 만사가 흔히 그렇듯, 삶은 뜻대로 수월하게 풀려나가지 않습니다.

   아직 아이린의 교육과정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졸지에 덜컥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게다가 혁명의 열기가 무르익어 가는 어지러운 정세 속에 가세가 날로 기울어 마침내 더는 학비를 댈 수 없는 궁색한 처지로까지 내몰리고 말지요. 뜻밖의 시련입니다. 하기야, 세상에 어디 뜻밖의 사태가 아닌 시련이 있던가요.     


뜻이 있는 곳에 은인이 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여기서 은인(恩人)이 나타납니다. 아이린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선생님의 주선으로 아이린은 한 미국인 부부의 가정에 입주합니다. 거기서 아이린은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노릇을 하며 공부를 계속합니다. 아이린은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하여 그들 부부의 눈에 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을 뒤바꿀 전기를 맞이합니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는 그 부부를 따라 아이린도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린을 마음에 들어 한 그들 부부가 아이린더러 자기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서 아직 어린 자기네 아이들을 계속 좀 돌보아달라고 제안해 온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공부도 계속 더할 수 있습니다.

   아이린에게는 중국을 떠나 어쩌면 자기 뜻을 펼칠 수도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지요. 그러나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면 두 번 다시 고향 땅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아이린은 마침내 마음을 굳게 먹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아픈 이별을 합니다.

   아이린이 도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그곳에서 아이린이 그 미국인 부부의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문물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식재료를 사러 들른 그곳 차이나타운의 한 가게에서 그곳으로 올 때 탔던 배에서 만난 한 중국 남자를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에게 남다른 호감을 품게 되고, 마침내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까지 보여줍니다. 뒤에 둘은 결혼하여 함께 중국 식당을 운영하면서 살아가게 되지요.     


커다란 발로 씩씩하게 서다

   한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각각 앞과 뒤에 놓인 한 가지 짤막한 다른 이야기 사이에 끼어 있는 모양새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린이 열아홉 살의 나이로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중국 식당 일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 1925년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실질적인 현재 시점입니다.

   한 젊은 남자가 아이린의 식당에 와서 음식을 주문합니다. 아이린은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봅니다. 그 옛날 자기와 정혼 상대로 선을 본 적이 있었던 바로 그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는 미국에 유학을 와 공부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자리에 누우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어머니를 뵈러 고국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는 출발하기 전에 그동안 가까이하지 못했던 중국 음식을 한 번 먹어보려고 우연히 그 식당에 들른 것입니다.

   당연히 그도 아이린을 알아봅니다. 어찌 못 알아보겠습니까. 서로 만감이 교차하는 두 사람―.

   아이린은 그에게 고국에 돌아가면 꼭 자기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이 이곳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고요. 그리고 유쾌하게 덧붙이는 마지막 한 마디가 가슴을 벅차게 울립니다.

   “내 커다란 발로 씩씩하게 서서 말이죠.”

   그렇습니다. 아이린은 이제 더는 ‘작은 발’이 아닌, ‘큰 발’ 중국 여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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