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32
CA156. 더글라스 서크,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1955)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된 여인 제인 와이먼과 정원사의 아들 록 허드슨의 사랑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끝내 이루어지는 과정. 서크 영화 특유의 테크니컬러가 지닌 색감의 기이한 낯섦. 뿌리 없는 곳에서 이민자들은 어떻게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살아가는가. 그들의 사랑이 감정적으로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것을 반드시 시대를 멀리 격(隔) 한 탓으로만 돌려도 괜찮은가.
CA157. 이동현, 〈하늘정원〉(2003)
서로 사랑하는 남녀 가운데 한쪽이 병들어 죽어가는 이야기가 일정한 시차를 두고 거듭되는 이유는? 안재욱과 이은주가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의 묘사가 부족한 것은 아무래도 간과하기 힘든 약점이다. 이후 죽어가는 이은주에 대한 안재욱의 안타까운 마음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탓이다.
CA158. 허우 샤오시엔, 〈해상화(海上花)〉(1998)
유곽이라는 특정한 실내 공간에서만 찍었는데도 그 바깥 공간과 시대에 대한 사유가 넉넉한 느낌이 드는 것은 허우 샤오시엔 영화만의 신기하고도 놀라운 현상이 아닌지. 전체 38개의 쇼트가 바뀌는 과정과 음악의 절묘한 조화―.
CA159. 김동원,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
그것이 하필이면 디스코여야만 할 이유는? 여기에 이 작품의 존재 의의가 걸려 있으므로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의무가 있다, 이 영화는. 아니, 관객은 그 답변을 듣고 싶다.
CA160. 이강래, 〈행주치마〉(1964)
경제 문제가 핵심인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이를 기르기 힘들어진 엄마가 그 아이를 잘사는 집 대문 앞에 버리고 가는 이야기. (이런 아이 유기, 또는 아이 청탁의 테마는 고레다 히로카즈의 2022년작 〈브로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 집의 사람들은 졸지에 그 아이를 고이 맡아 기르는데, 그 아이의 엄마가 그 집에 식모로 잠입하여 평생을 헌신하며 살아간다는 설정의 기이한 절절함. 아이를 유기하는 방법도 별수 없이 시대적인 변천을 겪는다는 것. 여자라는 존재는 행주치마로 대변된다는 의식의 고전적인, 또는 올드한 느낌. 여자 스스로의 입으로 선언되는 존재 증명. 아역의 안성기와 아버지의 아이콘 김승호의 연기, 그리고 그 잊기 힘든 아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