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63
CA811. 츠카하라 아유코, 〈첫 번째 키스〉(2025)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하는 이야기. 그렇다면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중요한가, 또는 더 중요한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당연히 중요한 것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니까 그녀와 그는 바로 이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15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CA812. 김홍선, 〈늑대 사냥〉(2022)
여우 사냥과 늑대 사냥의 차이. 또는, 〈파묘〉(2024, 장재현)와 이 영화 사이의 상동성. 언젠가부터 한국영화에 일제강점기의 서사가 끼어들기 시작했다는 것. 영화 속 생체 실험은 왜 항상 실패로 끝나는가. 물리적인 실패라기보다는 윤리적인 실패. 〈로건〉(2017, 제임스 맨골드) 속 생체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 유일한 성공 사례는 캡틴 아메리카 정도?
CA813. 랠프 존닥 & 에릭 라이턴, 〈다이너소어〉(2000)
살아남으려면 힘을 합쳐라.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그렇다면 공룡이 멸종한 것은 분열했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설마!
CA814. 브루스 베레스포드, 〈더블 크라임〉(1999)
세상의 모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한 번쯤 심각하게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남자(XY)’인 탓이다. 이거야말로 무시무시한 진실이다. 그러니 단순히 수효의 견줌만으로 세상의 반쪽 운운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처사다. 남자는 거의 전부라는 것. 적어도 ‘과반’이라는 것. 아직까지는. 그게 세상의 권력 구성이다. 그렇기에 여자의 의심은 ‘남자’를 검증하는 절차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언.
CA815. 류승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죽지 않으면 나쁘고, 나쁘지 않으면, 또는 나쁘지 않으려면 죽어야 하고―. 오로지 이 두 가지 선택의 길밖에 없다면 그가 영화감독이 되기로 한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