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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Jun 18. 2024

9. 지도지교, 역아소조

- 〈애오잠병서〉 /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대처하는 자세

   먼저, ‘子都之姣(자도지교)’, 곧 ‘자도의 아름다움’의 ‘자도(子都)’입니다.

   일명 공손알(公孫閼)로도 불리는 자도(子都)는 중국 춘추시대의 정(鄭)나라 사람으로, 역사상 잘생긴 남자의 대명사와도 같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의 경우처럼, 역시 실물 사진이 없으니, 어느 정도로 잘생겼는지를 오늘날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또, 4대 미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후대로 내려오면서 어느 정도 과장된 측면 또한 분명히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글에서처럼 미남이라고 하면 흔히 자도를 꼽을 만큼 그가 역대급으로 잘생긴 남자라고 평가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심지어 《맹자》와 《시경》에도 자도의 미모를 칭송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이 잠(箴) 부분에서 이달충이 잘생긴 자도, 또는 자도의 잘생김을 표현하려고 쓴 글자가 재미있습니다. 바로 ‘아름다울·아리따울·예쁠 교(姣)’자입니다.

   이 글자는 부수(部首)가 ‘여자 여(女)’자로 뜻(義)을 맡고, 옆에 붙은 ‘사귈 교(交)’자가 음(音)을 맡는, 육서(六書 :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 가운데 형성자(形聲字)에 해당하는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교(姣)’자는 부수(女)로 미루어 남자보다는 여자한테 어울리는 글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잘생긴 남자보다는 예쁜 여자를 표현하기 위한 글자인 셈이지요.

   여기저기서 이 글자에 대한 풀이를 찾아보면, ‘여자 여(女)’자 옆에 붙은 ‘사귈 교(交)’자도 여자가 다리를 꼬는 교태(嬌態)스러운 모양을 표현하는 글자인 탓에 단순히 아름답다는 뜻을 넘어서 넓게는 추잡하다는 뜻까지도 포함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순간 어쩌면 폴 버호벤의 저 논란 많았던 영화 〈원초적 본능〉(1992)에서 여주 샤론 스톤이 다리를 꼬던 그 유명한 장면을 떠올리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달충이 자도의 잘생김을 표현하는 글자로 ‘교(姣)’자를 썼다는 것은 자도가 남성성이 강한 마초 타입의 미남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여성스러운 면이 있는, 곧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스러운 미모의 남자가 아니었을까 하고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BTS의 뷔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루카 구아다니노)과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20, 우디 앨런)의 남주 티모시 샬라메 류의 꽃미남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으로, ‘역아소조(易牙所調)’, 곧 ‘역아가 만든 것’의 ‘역아(易牙)’ 역시 춘추시대 사람으로,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요리사였던 인물입니다.

   그 요리 솜씨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당시 사람들은 역아가 만든 음식을 생전에 한 번이라도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는군요.

   그 정도로 뛰어난 요리 솜씨의 소유자라면 제환공(齊桓公)의 총애를 받으면서 한세상 걱정 없이 잘 살았을 법도 한데, 그는 그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제환공이 별 뜻 없이 우스갯소리로 자신은 세상의 온갖 맛있는 음식을 다 먹어보았어도 사람의 고기만은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역아는 그 말을 귀담아듣고 기억해 두었다가 세 살 난 자기 어린 아들을 잡아 죽이고, 그 살로 요리를 만들어 제환공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대단히 엽기적인 이야기지요?

   아마도 역아는 제환공의 아주 특별한 환심을 사서 그걸 발판으로 총애받는 요리사 신분을 넘어서는 어떤 정치적인 야심을 충족시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아는 간신(奸臣)의 전형으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역아의 이런 행동은 거기에 아부나 아첨이라는 말을 쓰기도 민망하리만큼 너무나 끔찍합니다. 이런 역아를 가리켜서는 간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괴물이라고 해야 어울리지 않겠나 싶은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역아소조(易牙所調)’에서 ‘소조(所調)’는 역아가 ‘만든 것’, 곧 역아가 ‘만든 음식’을 뜻한다고 보아야겠지요.

   이 역아와 관련해서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자, 소식(蘇軾)·소철(蘇轍) 형제의 아버지이기도 한 소순(蘇洵)이 〈관중론(管仲論)〉이라는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역아와 같은 천하의 간흉(奸凶)을 처벌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관중에 대한 비판의 글입니다. 제환공 당시의 재상이 바로 관중(管仲)이었거든요.

   관중은 이름이 이오(夷吾)로, 보통 관중 또는 관이오(管夷吾)라고 불리는데, 당시 제나라의 재상으로서 제환공을 도와 그를 춘추오패(春秋五霸)의 패자(霸者)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그 덕에 삼국시대 촉나라의 재상이었던 공명(孔明) 제갈량(諸葛亮)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2대 재상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우리에게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고사(故事)를 통하여, 그 사람됨이 참으로 어질었던 저 포숙아(鮑叔牙)의 친구로 익히 알려져 있지요.

   〈관중론(管仲論)〉에서 소순은 재상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쥔 자리에 있던 관중이 역아와 같은 천하의 간신배를 처단하지 않고 내버려 둠으로써 뒷날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따로 지면이 필요하니, 여기서는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잠(箴)의 전문(全文)을 한 구 한 구 짚어가며 정리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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