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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Jun 11. 2024

8. 잠왈, 자도지교, 주불위미. 역아소조...

  - 〈애오잠병서〉 /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대처하는 자세

   우선, 맨 앞의 ‘잠왈(箴曰)’입니다.

   여기서 ‘경계할 잠(箴)’자는 그리 낯선 글자가 아니지요? 구약성경에 있는 〈잠언서〉의 ‘잠’이 바로 이 ‘잠(箴)’입니다.

   ‘잠언(箴言)’의 의미를 사전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과 경계가 되는 짧은 말’ 정도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구약성경의 〈잠언서(箴言書)〉는 말하자면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말들을 모아놓은 책’이니까, 이 정도 설명으로도 ‘잠(箴)’이라는 글의 성격을 짐작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왈(曰)’은 보통 ‘~가(이) 말하기를’ 정도로 번역합니다. 그러니까 왈(曰)의 바로 앞부분(‘~’)이 ‘왈(曰)’의 행위 주체, 곧 주어가 되는 셈이지요.

   그래서 이 ‘왈(曰)’이 들어간 전체 문장은 다음과 같은 모양새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이)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물론 저는 ‘~가 말하였다.’라고 한 번 끊고, 그 말한 부분을 큰 따옴표(“”)로 묶어서 처리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이때 주어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어가 사물이라면 주격조사를 처리할 때 사람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해야 덜 어색합니다.

   예컨대, ‘서왈(書曰)’은 ‘서경이 말하기를’이 아니라 ‘서경에 이르기를’로, ‘시왈(詩曰)’은 ‘시경이 말하기를’이 아니라 ‘시경에 이르기를’로 번역하는 식입니다.(한문에서 이 ‘왈(曰)’자 앞에 오는 ‘서(書)’자는 《서경(書經)》을, ‘시(詩)’자는 《시경(詩經)》을 가리킨다는 것도 알아두면 요긴하겠지요. 그래서 이 경우 그냥 ‘책(글)에 이르기를’이나 ‘시에 이르기를’이라고 하면 문의(文意)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번역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이 ‘잠왈(箴曰)’도 ‘잠이 말하기를’이 아니라 ‘잠에 이르기를’이라고 해야 어색하지 않은 번역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잠’을 사람 주어처럼 취급해서 ‘잠이 말하기를’ 또는 ‘잠이 이르기를’이라 한다고 해서 굳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싶기는 합니다. 문학에서는 일종의 의인법(擬人法)으로, ‘시적 허용’이라는 것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제가 공부할 때 교수님들께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우선은 그걸 따르는 것입니다.

   이 글의 마지막 대목인 ‘잠왈(箴曰)’의 다음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子都之姣(자도지교), 疇不爲美(주불위미). 易牙所調(역아소조), 疇不爲旨(주불위지). 好惡紛然(호오분연), 盍亦求諸己(합역구저기).

   언뜻 보면 4언시 같지만, 맨 마지막 구가 5글자이기 때문에 대놓고 4언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잡언시(雜言詩)’라는 명칭으로 분류하기는 합니다.

   어쨌거나 운자(韻字)까지 맞추었으니, 분명 운문(韻文)이기는 하지요.

   한시(漢詩)에서 운자는 대개 짝수 구의 끝 글자로 맞추니까, 여기서는 ‘미(美)’자, ‘지(旨)’자, ‘기(己)’자가 운자입니다. 중성(中聲), 곧 ‘가운뎃소리’인 모음에 해당하는 글자가 다 ‘ㅣ’로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자도의 아리따움을 누가 아름답다고 하지 않겠는가. 역아가 만든 것을 누가 맛나다고 하지 않겠는가. 좋아함과 미워함이 어지러우면 어찌 또 나한테서 그것을 구하지 않겠는가.

   끊어 읽기는 ‘자도지/교, 주/불위/미. 역아/소조, 주/불위/지. 호오/분연, 합/역/구저기’ 정도로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한 번 읽어보기만 해도 번역문만으로는 내용 파악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도(子都)’와 ‘역아(易牙)’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과 관련하여 어떤 고사(故事)가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다음 글에서 이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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