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수 May 28. 2024

6. 유비자소이퇴

  - 〈애오잠병서〉 /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대처하는 자세

   이제 이 글을 지은 이달충 본인의 목소리로 마침내 발화(發話)되는 그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有非子笑而退(유비자소이퇴).

   번역은 어렵지 않습니다.

   ‘유비자가 웃으면서 물러났다.

   끊어 읽기는 ‘유비자/소이/퇴’ 정도로 하면 되겠습니다.

   이 문장에 대해서는 심리적인 차원에서 해석이 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유비자가 물러난 것은 이해가 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으니까요.

   문제는 ‘웃을 소(笑)’자입니다.

   유비자는 이 순간 왜 웃었을까요?

   한문을 공부하다 보면, 어째서인지 한문 문장 안에서 이 ‘소(笑)’자가 단순히 기쁨과 즐거움, 또는 행복의 감정을 표현하는 웃음이 아니라, 경멸이나 조롱의 의미가 담긴 ‘비웃음’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소(笑)’자는 비웃음의 느낌은 아닙니다. 누가 봐도 앞서 무시옹이 했던 말들은 결코 함부로 비웃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매우 중요하고 무게 있는 교훈을 담고 있는 말들이지요. 이 정도도 파악 못 할 만큼 유비자가 형편없는 안목의 소유자라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또, 그렇듯 무게 있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평소 사람들 사이에서 무시옹이 어떤 위인으로 알려져 있을지 어지간히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을 상대로 감히 비웃다니요? 있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비자는 분명히 웃었습니다. 이걸 어떤 성격의 웃음으로 파악해야 할까요?

   저는 바로 이 대목에 이 글의 흥미로운 묘처(妙處)가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실제로 유비자가 물러날 때 지어 보인 웃음(笑)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단서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아마도 일본의 ‘국민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같으면 그가 자기 소설 곳곳에서 습관처럼 쓰기를 즐겼던, 저 유명한 ‘쓴웃음’ 정도로 처리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요.

   결국 독자로서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몇 가지 종류로 이 웃음의 성격을 나누어서 고심해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선, ‘역시!’ 하고 속으로 무시옹의 주장에 공감하고, 그런 무시옹의 생각과 안목을 인정하는 웃음일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유비자가 무시옹을 찾아와 던진 질문은 아마도 그런 문제, 곧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댈 때 거기에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좋을지에 대한 적절하고 요긴한 지침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면 맞지 않을까요.

   따라서 유비자는 무시옹한테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아주 좋은 가르침을 얻은 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야말로 ‘비웃음’일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무시옹의 대답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군자연하는, 솔직하지 못하게 꾸미는 태도로 느껴질 수도 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좋아하고, 비난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까요.

   이 경우라면 유비자는 어쩌면 무시옹에게서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답변의 내용을 감안할 때 무시옹은 어느 사안에 대해서든 여느 사람들처럼 감정적으로, 철학 용어를 빌린다면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절제력이 강한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 경우 드러나는 것은 평소 유비자가 무시옹을 어떤 위인으로 평가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유비자는 무시옹 같은 점잖고, 자기 절제력이 강하고, 이성적이고, 생각이 깊은 종류의 사람을 위선자나 허위의식에 젖은 의뭉스러운 위인으로 여기면서 싫어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때 유비자의 웃음(笑)은 ‘그러면 그렇지!’ 하고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이 옳았음을 스스로 확증하고, 기존의 태도에서 조금의 변화도 없는 무시옹을 비웃는 웃음일 것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못 당하겠네!’ 하고 패배를 자인하는 웃음일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유비자가 무시옹을 당황스럽게 만들 속셈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비자는 아마도 적당히 대답할 말을 얼른 찾지 못해 쩔쩔매는 무시옹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고소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상대방에게 짐짓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져놓고는 그 상대방이 당황하여 쩔쩔매는 모습 보기를 즐기는 악취미의 소유자들 말입니다.

   하지만 무시옹은 유비자 생각으로도 기가 막히게 설득력 있는 훌륭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비자는 마음속으로 승복할 수밖에 없었고요.

   따라서 이때의 웃음(笑)은 그런 패배자의 멋쩍은 씁쓸한 웃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유비자가 따로 아무 말도 없이 다만 씁쓸한 웃음만 지으며 물러난 것도 이해가 됩니다. 패배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요.

   유감스럽지만, 이 유비자의 웃음을 본 무시옹의 반응에 대해서는 이 글에 아무런 언급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루어 짐작할 여지도 거의 없는 형편이지요. 적어도 이 글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글쎄요. 어떤 종류의 웃음이 맞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첫 번째의 ‘역시!’ 하는 인정의 웃음으로 보고 싶기는 합니다. 유비자의 대답이 참 설득력 있는 훌륭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처하는 무시옹의 태도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금처럼 악성 댓글(악플)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매체와 방법으로 누군가를 비방하는 일이 만연해 있는 풍토에서, 그런 악담의 주체가 어떤 됨됨이의 사람인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무시옹의 태도는 내가 나를 대상으로 하는 불특정 다수(또는 소수)의 무차별적인 악담으로부터 정말 나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매우 필요하고도 요긴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더 작은 규모의 실제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요.

   이제 〈애오잠병서〉는 실질적인 마무리 단계로 접어듭니다.  *

이전 05화 5. 고왈, 유인인, 위능애인, 능오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