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수 Jun 04. 2024

7. 무시옹인작잠이자경

  - 〈애오잠병서〉 /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대처하는 자세

   유비자가 웃음 지으며 무시옹 앞에서 물러간 다음, 무시옹은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잠(箴)’을 짓습니다.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無是翁因作箴以自警(무시옹인작잠이자경).

   ‘무시옹/인/작잠이/자경’ 정도로 끊어 읽으면 되겠고요. 맨 뒤의 ‘警(경)’자는 ‘경계하다’라는 뜻이지요? 하여, 저는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무시옹은 인하여 잠을 지어서 스스로 경계하였다.

   여기서 ‘인하여(因)’는 ‘유비자와 나눈 문답으로 말미암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으로 인하여’에서 ‘~으로’에 해당하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는 셈이지요.

   이런 식의 생략이 한문 문장에서는 매우 빈번합니다. 따라서 읽는 이가 머릿속으로 알아서 적확하게 그 생략된 부분을 찾아 채워 넣어 가면서 문의(文意)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무시옹은 지금까지 유비자와 나눈 문답이 계기가 되어 바야흐로 ‘잠’을 짓는다는 것이지요.

   ‘作箴以(작잠이)’의 ‘以(써 이)’자도 ‘之(갈 지)’자처럼 쓰임새가 워낙 많아서 그때그때 확인을 해야 하는 글자입니다. 여기서는 ‘~로써’라고 새길 수 있는 도구격 조사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니까 ‘作箴以(작잠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잠을 지음으로써’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저는 조금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잠을 지어서’라고 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번역이 어렵지는 않은데, 주목해야 할 글자가 있습니다. 바로 이 ‘경계할 잠(箴)’자입니다.

   이 ‘잠(箴)’은 한문 산문의 여러 가지 문체들 가운데 하나인 ‘잠명류(箴銘類)’에 속하는 글의 한 종류를 가리킵니다.

   이달충이 쓴 이 글의 제목이 〈애오잠병서(愛惡箴幷序)〉 아닙니까. ‘애오잠(愛惡箴)’의 ‘잠(箴)’이 바로 이 ‘잠(箴)’입니다.

   한문 산문의 문체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한문 산문의 문체는 대개 유교 경전과 제자서(諸子書)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교 경전과 제자서가 그 문체의 기원에 해당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여기서 ‘제자서(諸子書)’란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의 준말로, 그야말로 ‘제자백가’라고 통칭되는 다양한 학파의, 또는 그 학파에 속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글이나 책을 포괄하는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공자, 맹자를 비롯하여 노자, 장자, 순자, 묵자, 한비자…… 등등이 다 여기에 포함되지요.

   이 문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이러저러한 수많은 갈래로 나뉘었고, 그 갈래의 수효가 늘어날수록 당연히 문체의 존립 양상은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갔습니다.

   따라서 그 복잡함을 단순화시키려는 시도가 당연히 뒤따르지 않았겠습니까. 그 수많은 문체를 일정한 수의 종류로 묶어서 일목요연하게 분류하려는 작업이 다양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현대문학 용어들 가운데서 이 ‘문체’라는 것과 비슷한 말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장르’가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정확히 대응되는 느낌은 아닙니다.

   그런 다양한 작업 가운데 청(淸)나라의 요내(姚鼐)라는 사람이 《고문사류찬(古文辭類纂)》이라는 책에서 열세 가지 종류로 분류한 것이 지금까지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명류’도 이 열세 가지 문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열세 가지를 가나다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논변류(論辨類), 비지류(碑誌類), 사부류(辭賦類), 서독류(書牘類), 서발류(序跋類), 송찬류(頌讚類), 애제류(哀祭類), 잠명류(箴銘類), 잡기류(雜記類), 전장류(傳狀類), 조령류(詔令類), 주의류(奏議類), 증서류(贈序類).

   글이 번잡하게 길어질 터이니, 낱낱이 다 다루지는 않고, 이 글과 관련 있는 ‘잠명류’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잠명류(箴銘類)’는, ‘경계할 잠(箴)’자와 ‘새길 명(銘)’자로도 미루어 알 수 있듯, 마음에 새겨둘 만한 경계나 권면의 내용을 담은 성격의 글들을 싸잡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한데, 다른 글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잠명류에 속하는, 또는 잠명류로 분류되는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산문으로, 뒷부분은 운문으로 쓰니까요. 산문인 앞부분을 ‘서(序)’라 하고, 운문인 뒷부분을 ‘잠(箴)’ 또는 ‘명(銘)’이라 합니다. 이 ‘잠’과 ‘명’을 합쳐 ‘잠명’이라 하는 것입니다.

   ‘애오잠병서’의 ‘서’가 바로 이 ‘서(序)’, 곧 ‘서문(序文)’입니다.

   ‘병서(幷序)’는 풀이하자면, ‘써서 나란히 붙인 서문’, 곧 ‘병기한 서문’이라는 뜻 정도가 되겠지요. ‘덧붙인 서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서문이니까 당연히 앞부분에 오고, 산문으로 씁니다. 따라서 ‘애오잠병서’는 ‘서문을 병기한 애오잠’이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대개 이 명칭으로 부릅니다.

   산문으로 쓰는 앞부분의 이 ‘병서’에 해당하는 글이 끝나고 나면, 비로소 운문으로 쓰는 뒷부분의 ‘잠(箴)’에 해당하는 글이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애오잠병서〉 전체 글에서 ‘無是翁因作箴以自警(무시옹인작잠이자경)’까지가 ‘병서’ 부분인 셈입니다.

   이제 마침내 ‘잠왈(箴曰)’로 시작하는 마지막 운문 형식의 ‘잠(箴)’ 대목이 이어집니다. 유명한 고사(故事)와 관련된 내용이라 이 글의 앞부분과는 또 다른 면에서 흥미롭습니다.  *     

이전 06화 6. 유비자소이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