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수 May 14. 2024

4. 희여구, 당심기인오불인오지인지인불인여하이

  - 〈애오잠병서〉 /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 대처하는 자세

   무시옹은 이어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요약해서 유비자에게 들려줍니다.

   喜與懼(희여구), 當審其人吾不人吾之人之人不人如何耳(당심기인오불인오지인지인불인여하이).

   뒷부분이 좀 길지요?

   여기서는 우선 ‘갈 지(之)’자의 해석에 주의해야 합니다. 한 문장 안에서 똑같은 글자가 서로 다른 문법적 기능으로 두 번 쓰였으니까요.

   앞의 ‘之(지)’는 바로 뒤의 ‘人(인)’을 꾸며주는 구실을 하는 관형격조사로 쓰였고, 뒤의 ‘之(지)’는 주격조사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人吾不人吾之人(인오불인오지인)’은 이 자체를 한 덩어리로 보아 ‘인오/불인오/지/인’쯤으로 끊어 읽을 수 있을 테니, ‘나를 사람답다고 하고,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뒤의 ‘之(지)’를 붙이고, 앞의 ‘其(기)’라는 지시대명사까지 합쳐서 ‘其人吾不人吾之人之(기인오불인오지인지)’로 놓고 번역하면, ‘기/인오/불인오/지/인지’로 끊어 읽어서 ‘나를 사람답다고 하고,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그 사람이’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맨 뒤의 ‘~이’가 바로 주격조사 ‘之(지)’의 번역입니다. 이때 맨 앞의 ‘其(기)’자는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으므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지시대명사의 기능을 살려서 ‘그’라고 번역했습니다.

   순서대로라면 ‘그’를 맨 앞에 붙여야겠지만, 이 ‘其(기)’자가 지시하는 것이 세 개의 ‘人(인)’자 가운데 세 번째로 나온 ‘人(인)’자이기 때문에 읽는 분이 헷갈리지 않도록 그 세 번째 ‘人(인)’자 바로 앞에 붙여서 번역한 것입니다.

   제가 굳이 이 ‘其(기)’자를 번역한 것은, 저는 한문 문장을 번역할 때 단 한 글자도 빼놓지 말고 또박또박 짚어가며 번역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교수님들께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교수님께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의 한문 문장 번역 문제를 채점하실 때 학생들이 빼먹고 번역하지 않은 글자마다 일일이 감점을 하셨습니다.

   강독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에게 문장을 읽고 번역하라고 시키실 때 누구든 한 글자라도 건너뛰면 바로 지적을 하시면서 그 글자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겠느냐고 꼬치꼬치 따져 물으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포함하여 모두가 거의 예외 없이 당황하면서 쩔쩔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 곤혹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한문 실력이 차곡차곡 쌓여갔던 것이지요.

   그 덕에 지금도 저는 한문 문장을 번역할 때 아무리 문맥상 번역하지 않는 편이 우리말 문장으로는 더 나아 보일지라도 빼놓고 번역하지 않은 글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 한 글자 때문에 기분이 개운치가 않습니다. 그 빼먹은 글자들을 지적하시는 교수님의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귀울음처럼 머릿속에서 울리거든요.

   그래서 되도록 어떻게든 모든 글자를 빼놓지 않고 낱낱이 다 짚어 가면서 번역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문 문장을 번역하다 보면 끝내 특정 글자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속절없이 생깁니다. 그런 경우를 백 퍼센트 모조리 다 피해 갈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글자로는 대개 독립된 특별한 뜻이 없는 ‘허사(虛辭)’가 많기는 하지요.

   이와는 반대로, 앞의 사례처럼, 없는 글자를 생략된 것으로 보고 새로 말을 만들어서 채워 넣어야 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습니다.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적절히 대처해 가면서 번역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문의 여러 가지 특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맨 뒤의 ‘耳(이)’자 바로 앞에 있는 ‘如何(여하)’는 우리가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심심찮게 쓰고 있는 말입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그러나 이 문장에서 ‘如何(여하)’를 그대로 ‘여하’라고 번역하면 뜻은 통해도 어감이 뭔가 모르게 조금 어색하다는 것이 제 느낌입니다. 또, 국어사전에서는 ‘여하(如何)’를 간단히 ‘어떠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를 따르면 더 어색하지요.

   그래서 저는 여기서 ‘如何(여하)’를 ‘여부(與否)’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지금 무시옹은 자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인지, 사람답지 않은 사람인지, 그러니까 떠들어대는 그 사람이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속하고 속하지 않는지를 먼저 살펴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니, 저는 ‘여하’보다는 ‘여부’가 한결 더 문의(文意)를 분명하게 살려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맨 끝의 ‘귀 이(耳)’자는 문장의 맨 끝에 놓였을 때 한정(限定)의 의미를 지닌 종결사 구실을 하는 글자로, 대개 ‘~뿐(따름)이다’라고 번역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체 문장의 맨 앞에 놓인 ‘당할 당(當)’은 보통 ‘마땅히 ~해야 한다’라고 번역하는 글자고, 바로 뒤의 글자는 ‘살필 심(審)’자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하여 뒷부분의 문장 전체를 번역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나를 사람답다고 하고,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그 사람이 사람다운지, 사람답지 않은지의 여부를 살펴야 할 따름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전체 문장 앞부분의 ‘喜與懼(희여구)’인데, 이 자체는 번역이 어렵지 않습니다. 글자 그대로 ‘기뻐함과 걱정함(두려워함)’이라고 하면 될 테니까요.

   문제는 이걸 뒷부분과 연결할 때입니다. 이렇게 됩니다.

   ‘기뻐함과 걱정함, 마땅히 나를 사람답다고 하고,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그 사람이 사람다운지, 사람답지 않은지의 여부를 살펴야 할 따름이다.’

   앞부분과 뒷부분을 떼어놓고 각각 해석하면 이상할 게 없지만, 합쳐서 한 문장으로 놓고 보면 아무래도 뭔가 어색합니다. 논리적으로 부드럽게 연결되는 느낌은 역시 아니지요? 어딘가 비문(非文)이나 오문(誤文)의 느낌이 납니다.

   물론 문장 전체의 의미는 이제 분명합니다.

   기뻐하는 것과 걱정(두려워)하는 것은, 그러니까 기뻐하든 걱정하든, 그것은 나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의 됨됨이를 먼저 살펴보고 난 뒤에 할 일이라는 무시옹의 주장이니까요. 그래도 결코 늦지는 않다, 이것입니다. 어렵지 않지요?

   저도 이 문장을 매끄럽게 번역하기가 쉽지 않아서 참고하려고 여러 다른 번역문들을 찾아보았지만, 무시옹의 주장이 제대로 드러나도록 만족스럽게 번역된 사례를 아직 못 만났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이렇게 번역하기로 했습니다.

   ‘기뻐함과 걱정함은 마땅히 나를 사람답다고 하고,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하는 그 사람이 사람다운지, 사람답지 않은지의 여부를 살피고서야 할 따름이다.

   그래도 아주 매끄러운 느낌은 아니지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안타까워도 장차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약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제 글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듭니다.  *

이전 03화 3. 오차미지인오지인하인야, 불인오지인하인야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