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트러스와 사프란
따습게 방바닥을 데우고 이불을 둘러 쓴 후 베란다에서 막 꺼내 까먹던 차가운 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워 인상이 써지지만 새콤하고 달달한 과육이 한가득 든 겨울 감귤 말이다.
미국도 겨울을 시트러스의 계절이라 부른다.
사추마(감귤 종), 포멜로, 자몽, 레몬, 오렌지 할 것 없이 시트러스 계열 과일들이 가장 맛있는 시기이다.
파티셰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은 겨울이다.
때문에 대부분 레스토랑의 겨울 디저트 메뉴에는 초콜릿이나 따뜻한 디저트들이 많다.
하지만 파티셰들에게 보릿고개를 대비해 심는 보리처럼 소중한 재료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시트러스 계열 과일이다.
가을이 지나고 날이 추워질 때쯤 거래처에서 맛보라고 다양한 시트러스 계열 과일들이 들어왔다.
하나하나 먹어봤다.
과육도 맛보았고 껍질의 오일 부분도 맛보았다.
버릴 것 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추운 겨울의 오아시스 같은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들은 하나씩만 먹어도 맛있지만 달달한 맛이 강한 시트터스와 신 맛과 쓴 맛이 강한 시트러스들을 샐러드처럼 믹스해 먹는 것은 새롭게 맛있다.
귤과 오렌지에서 오는 달달함과 다른 시트러스가 갖고 있는 강한 신맛이 입안에서 서로 어우러졌을 때 소금 한 꼬집 입에 넣어보면 그야말로 극락이다.
소금 하나만으로도 요리가 되어주는 소중한 겨울의 대표적인 식재료이다.
가장 좋아하는 귤과 과일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나는 감히 포멜로 라고 대답하고싶다.
포멜로 중에 가장 독특한 종인 Tahitian 포멜로는 전 세계 모든 셰프들에게 매 겨울 사랑받는 식재료이다.
입에 넣는 순간 은은한 단 맛과 새콤한 맛 그리고 자몽이 갖고 있는 쌉싸름한 맛은 거부감이 전혀 없을 정도로 매우 약하게 난다.
그리고 이 과일의 포인트는 검은 후추의 향이 난다는 것. 때문에 디저트보다는 요리에 주로 사용되는 시트러스계 과일이다.
디저트도 하나의 요리이다.
달아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매번 깨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디저트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을 보여주고 맛보게 해주고 싶은 것은 내가 요리사로서 그리고 파티시에로서 항상 지니는 마음가짐이다.
Tahitian 포멜로의 과즙을 내렸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시트러스 과일들의 과육 조직만의 형채를 유지한 채로 넣어 조약돌 모양의 젤리로 만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질겅질겅한 젤리가 아닌 입에서 사르르 녹는 텍스쳐기에 입 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포멜로의 향, 그리고 그 안에 톡톡 터지는 자몽, 핑거라임, 사추마, 오렌지의 과육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이 과일 젤리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피스타치오를 생각했다.
유럽에서는 너무도 흔히 쓰는 조합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오렌지 껍질과 피스타치오를 활용한 케이크와 빵이 베이커리의 메인 상품으로 올라가곤 한다.
피스타치오 원물만을 사용해 맛있는 무스를 만들어 젤리와 같은 조약돌 모양으로 표현했다.
시트러스와 피스타치오로는 작품이라 표현하기엔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사프란이 생각났다.
백합과 꽃인데 이 꽃의 암술을 말려 향식료로 사용한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향식료이다.
사프란 1g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500개의 암술을 말려야 한다.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향식료계의 금덩이라고 불리는 식재료 중 하나이다.
시트러스와 사프란의 조합은 생소할 수 있지만 그들이 서로 적절히 요리됐을 땐 매우 고급진 맛을 낼 수 있다.
그렇게 사프란 젤라또를 만들어 그릇 위 겨울이 담긴 아름다운 하나의 정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손님들에게 디저트라는 요리를 달리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의 감각을 선물할 수 있어 행복했던
Citrus and Saffron,
이야기가 담긴 음식은 맛없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