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햇 밤
외국에 살다 보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법.
때문에 갈망하는 ‘맛’은 늘 소재가 되어준다.
찰떡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빠삐코, 뽕따를 고를 때 바밤바를 집어 계산대 위에 올리던 나를 쬐만한 애가 입 맛은 어른이라며 주변에선 신기해했다.
매년 가을 나는 그때로 돌아간다. 밤 맛 아이스크림 사이에 달콤한 사과 시럽, 그리고 가끔씩 씹히는 밤 알갱이는 막대 바 4개에 1000원 하던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아이스크림이다.
미국 밤은 한국에서 키우는 종과 다르게 씨알이 작고 수분이 적은 편이지만 맛있다.
햇곡식과 햇과일은 종을 떠나 맛있다.
퍽퍽한 밤은 또 그만의 매력이 있다. 밤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프랑스산 밤잼을 수입해 쓰는 셰프들이 많지만 내가 원하는 바밤바의 밤 맛을 그 제품으로는 낼 수 없기 때문에 미시간 주에서 수확한 로컬 햇 밤으로 직접 밤 페이스트를 만들어 사용했다.
바밤바 사이에 들어있는 사과잼을 어떻게 표현할 까 고민하다가 꿀과 사과로 시럽을 만들었다.
사과를 블랜딩 하는 대신 꿀에 사과를 넣고 오래 달였다.
어릴 적 감기에 심하게 걸리면 엄마가 꿀물에 배와 사과를 오래 달여 준 기억이 있어 활용했다.
너무 달지도 않았고 입에 불편하게 남는 식감도 없었다.
그저 밤 아이스크림에 꿀 사과 시럽을 올려 먹기만 해도 내가 갈망하던 옛 그 맛을 구현할 수 있었다.
메뉴 개발을 할 때 과거의 기억을 사용하되, 나의 것으로 만들어 조화로운 맛으로 표현하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될 단계이다.
바밤바라는 추억 그대로를 메뉴에 올린다면 이것은 나의 메뉴가 될 수 없다.
밤, 사과, 꿀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아름다운 배경에 폭죽을 터트려줄 무언가.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교복 입고 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밤조림이 급식으로 나왔던 적이 있었다.
달달한 간장 소스에 푹 절여 나왔던 따뜻한 밤 조림, 정말 맛있게 먹었었다.
밥에 쓱쓱 비벼 한 숟갈 크게 떠먹었던 밤 조림은 따뜻했고 달달했고 중독적인 간장의 감칠맛 때문에 남길 수 없는 그런 반찬이었다.
밤 조림을 떠올리다 문득 레스토랑 가드망제 스테이션에서 일하는 쿡들이 사용하던 소스 중에 ‘커피 소유’가 생각났다.
에스프레소 샷을 소유에 섞은 것이 아닌, 커피 원두를 추가해 직접 발효한 소유였기 때문에 애초에 커피 향은 아주 은은하게 돌면서 장의 맛도 진간장처럼 드세지 않았던 식재료였다.
‘찾았다, 입안에서 폭죽이 되어줄 그 무언가.’
흥분한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히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 맛을 어떻게 접시 위에 표현할지 고민했다.
가을을 지내다 보면 겨울이 오기도 전에 예상치도 못한 순간 눈이 올 때가 있다.
추운 겨울은 싫지만 첫눈은 늘 반갑고 누군가는 그날을 특별하게 기념하기도 한다.
내 디저트가 손님들의 첫눈이 되어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버터밀크와 커피소유를 블랜딩해 급속 냉각 시켜 첫눈을 표현했다.
처음에는 우유에 커피소유를 블랜딩해 냉각 시켜 실험했었는데 이보다 버터밀크만의 시큼한 맛은 커피소유의 감칠맛을 더 잘 강조해 주었다.
그 위에 밤 크럼블을 뿌려 식감을 주었고, 소유에서 나는 커피의 향이 따로 놀지 않도록 조금은 다크한 초콜릿 크레무를 구성에 추가해 주면서 벨런스가 흔들리지 않도록 맛의 조합에 신경을 써주었다.
메인 포인트인 밤 아이스크림, 그리고 그 사이 오랜 시간 다려 만든 사과 꿀 소스를 둘러 비로소 플레이팅을 완성했다.
더위가 그치고 선선한 바람이 불던 그 해의 그날, 농부들이 봄, 여름 열심히 땀 흘려 정성을 들인 곡식과 과일을 거두는 계절, 바로 가을이다.
요리사로서는 가장 겸허해지는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바다, 하늘, 그리고 농수산업자들에게 더 감사해지는 가을이다.
1000원의 행복이 담겼던 나의 가을
Chestnuts and honey,
이야기가 담긴 음식은 맛없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