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되었다
살과 함께 몸의 근육이 빠졌다. 뛰는 것은 물론이고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제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뼈밖에 없었다.
거울을 보아도 성취감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거울에 비치는 것은 걸어 다니는 해골 한 마리였다.
나는 내 문제를 이제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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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성 식욕부진증.
즉, 거식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섭식장애는 짧게 음식 섭취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정신적 질환이라 설명할 수 있다.
그래, 나는 정신병자였다.
거식증 치료법에 대해 검색했다. 조금씩 먹는 것을 늘리고 그것에 스트레스받지 말기. 간단하지만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섭취 칼로리를 높이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동안 먹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사과 하나와 삶은 계란 한 개뿐. 하지만 사람들이 마음을 먹는다고 모두 옮기지 않듯, 나 또한 그러였다.
섭취 칼로리를 높이자 마음먹은 지 이주일. 숫자는 그럼에도 떨어져 갔다.
머릿속으로는 올려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에게 내 의사를 밝혀야만 했다.
“나 심리 상담받아보고 싶어.”
어렵게 꺼낸 한 마디.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좋지 않았다. 독일에 살고 있다지만 부모님은 이미 수십 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토종 한국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런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딸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한 나머지, 결국 두 사람은 내 이야기에 귀를 귀 기울였다.
마침내 나의 첫 상담이 예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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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병원에 들어섰다. 잠시 뒤, 내 이름이 불리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식증이네요.”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이 오간 결과, 의사의 입에서 최종적으로 병명이 나왔다. 나야 예상했었던 결과였지만 부모님께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과.
나는 최종적으로 정신병을 판단받은 것이었다.
다음 상담 날짜를 잡기 전, 의사가 물었다. 혹시 피검사를 해보았냐고 말이다. 엄마가 혹시 몰라 가져왔던 검사 종이를 건넸다. 의사는 결과지를 잠깐 살피다 심장 검사를 받아볼 것을 추천했다.
운 좋게도 내가 상담은 받은 곳은 대학병원에 속해있던 곳이았다. 즉, 그날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간호사를 따라 난생처음 보는 기계가 있는 방에 들어갔다. 간호사를 따라 옷을 벗고 침구에 누웠다. 의사가 내 심장을 관찰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덩달아 심각해진 표정을 한 엄마가 물었다. 문제가 있냐고 말이다.
“심장이 잘 안 뛰어요.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군요.”
한 마디로 입원 확정이라는 소리였다.
검사가 빠르게 진행된 듯, 입원 처리도 빠르게 진행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머무를 수 있는 병실이 존재하지 않는 탓이었다. 병원 측에서는 급하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다른 큰 병원에 연락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곳에는 남은 병실이 있던 상태. 잠시 뒤, 나를 테울 구급차가 도착할 것이라 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엄마는 하얀 낯빗으로 평소 전화를 즐겨하지 않았음에도 아빠와 한참 동안 통화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나를 테우고 갈 구급차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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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물게 될 곳은 집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반이 떨어진 곳이었다.
덜컹이는 베드에 몸을 맡겼다. 처음 보는 기계들이 내 몸에 부착되었다. 수십 개의 바늘이 내 팔을 쑤셨다. 얇은 피부는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담당 의사가 들어와 짧게 나의 상태를 설명했다. 깨어있는 동안 내 나의 대의 정상 심장박동수는 80에서 100 사이. 하지만 나의 수치는 65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지는 병원에 대한 짧은 설명. 병문안은 24시간 가능하다는 점. 밥은 하루에 규칙적으로 세 번씩 나올 것이라는 것. 혹시 먹고 싶은 것이 따로 있다면 부모님이 면회 때 들고 와도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나의 생활 반경이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었다. 배정받은 병실 그리고 2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층의 복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몸과 연결된 심박수 측정기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다.
날이 저물고 내일 짐을 들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엄마가 집으로 돌아갔다.
고요한 병실에는 기계의 소음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