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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m Jul 25. 2024

살기 위해 독을 마셨다

약이라는 탈을 쓴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째.

   다크서클이 더욱 진해졌다. 원래도 잠 못 들던 밤이었다. 그것에 더해 밤마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기계. 심박수가 심각하게 떨어진 까닭이었다.


.


   학원은 물론이고 다니던 학교까지 출석을 멈춘 상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기계의 선이 딸려가는 침대 주변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누워있는 것뿐이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잘 뛰지 않는다던 심장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때만큼은 시끄럽게 뛰는 것만 같았다.


   입원을 하고 생긴 나의 필수적인 아침 루틴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화장실을 간 뒤, 몸무게를 잰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입원을 하기 전에도 매일 반복했던 루틴이었기에. 하지만 그다음은 항상 문제가 되었다. 바로 내 몸의 상태를 알기 위해 피를 뽑아야 하는 것. 그리고 나에게는 망할 주사 공포증이 있었다.


   속이 울렁였다. 눈앞이 핑글 돌았다. 간호사의 지침에 따라 시선을 돌리고 숨을 크게 쉬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낮아지는 것은 없었다. 마침내 길고 뾰족한 바늘이 내 살을 관통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의 심장은 잘 뛰지 않았다. 즉, 몸에 혈액 공급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말. 원래라면 길게 이어지지 않을 작업. 팔에 네 번이 넘는 주사 바늘을 찔러야지만 그들이 원하는 충분한 혈액을 모을 수 있었다.


   몇 분 간의 사투가 끝나고 아침 식사가 나왔다. 이곳은 독일. 즉, 이들의 주식은 빵이라는 소리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나오는 호밀빵 두 개와 버터, 잼, 꿀 등 빵에 발라 먹는 스프레드, 마지막으로 과일이 나왔다.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식습관이었다. 더불어 나는 정신병 환자.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떠오르는 정보들.


   ‘버터는 포화지방이 많아.’ ‘아침부터 빵? 이건 혈당 스파이크 직빵이잖아.’


   그렇게 나는 죽을 위기에 놓였음에도 끝까지 먹는 것을 거부했다.


   이런 내가 싫었다.


.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길게 느껴졌던 일주일은 이주일이 되었다.


   “오늘부터 이걸 세 번씩 마실 거야.”


   정체 모를 음료 한 잔이 내 앞에 내밀어졌다.


   “이게 뭐예요?”

   “바닐라 라떼야. 이게 싫으면 다른 맛도 있어.”


   의사의 친절한 대답에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바닐라 라테라고? 바닐라 라떼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내 눈에는 그저 설탕 덩어리를 녺인 독약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시기 싫어요.”


   의사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직관적인 나의 몸 상태에 대한 설명.

   지금 내 몸은 심장을 뛰게 할 에너지조차 없다고.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이렇게 계속해서 음식 섭취를 거부하면 호수를 이용하여 나의 위에 억지로라도 음식을 넣어야 할 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액체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고도 말이다. 500ml라는 얼마 되지 않는 양에 무려 500 칼로리가 들어있는 액체라고.

   이 한 컵에 담긴 게 자그마치 500 칼로리란다. 눈앞이 아찔했다. 한 잔에 500 칼로리인 이 액체를 하루에 꼬박꼬박 세 번씩 마셔야 한다니.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 위장에 호수를 꽃아야 하는 상황.


   눈물이 고였다. 그래, 나는 내 몸을 살리기 위해 독약을 삼켰다.


   .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그럼에도 내 심장은 뛰지 않았다. 내 심장은 여전히 언제 멈춰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고장 난 기계였다.

   독약의 빈도를 높였다.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으로. 그리고 독약을 마실 때는 항상 옆에서 간호사가 나를 감시했다. 내가 마시지 않고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어이가 없었다.


   살이 찔빠에는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 소리 지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자 지금껏 내가 해 온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왔는데. 내가 어떤 고생을 했는데 말이다.

   제한되어 있는 공간. 내가 행동하는 모든 것이 기록되고 관찰되는 이곳. 잠을 제대로 잔 날이 언제일까. 스트레스는 계속해서 쌓여만 갔지만 그것을 해소할 방법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냥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주는 지금까지의 벌인 것일까, 내 바람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약을 마시는 빈도를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으로 늘린 상태였음에도 심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나아져야 할 내 심장은 언제 멈춰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는 고장 난 기계였다. 하지만 지금 머물고 있는 병원에는 불행히도 내 심장의 상태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기계가 없었던 상태.


   나는 병원을 옮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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