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도 스치지 않는 비대면 거래
옆집에 아무개님이 산다.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신다고 들었다. 이 집에 산 지도 4년이 넘었는데 가물에 콩 나듯 마주치니 할머니 얼굴이 익숙지 않다. 아는 게 거의 없다. 복지관에서 정기적으로 반찬을 배달해주고, 정부미가 집 앞에 놓여있다는 거 정도. 활기찬 목소리의 여성분이 집을 자주 드나드는 편인데 여동생쯤으로 보인다.
“언니, 나야.”
잠긴 문고리를 내 집처럼 거침없이 잡아당기는 걸 보면 친언니가 아니라도 친한 사이인가 보다.
당근마켓에도 아무개씨가 많다. 저마다 아이디가 달려 있지만 식별표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그리 궁금하지도 않다. 그나저나 필요한 물건을 파는지, 내 물건에 관심이 있는지만 알고 싶을 뿐이다.
당근마켓은 아무개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당근톡으로 판매자는 구매 관심자와 채팅이 가능하니 연락처를 주고받을 일이 없다. 구매 예약자와는 번호 없이 통화도 가능하다. 전용 결제 창구인 당근페이를 이용하면 판매금액을 받을 때도 계좌번호를 알려줄 필요도 없다.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는 아무개씨와 아무개씨 사이에 거래가 착착 진행된다.
판매자 아무개씨는 비대면거래를 선호한다.
당근마켓에서는 문고리 거래라고도 한다. 거래장소와 시간을 정해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게 번거로워졌다. 주소를 공유하고 물건을 찾아가는 거다. 판매자 아무개씨는 대충 시간 맞춰 집 문고리에 물건을 걸어두고,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 역시 미리 알려줬으니, 신경을 쓸 게 하나도 없다. 택배기사님의 물건 수거와 똑같다. 예전에는 비대면거래를 제안하면서 ‘아이가 있어서요.’ 식으로 미안함을 비추기도 했다. 어느새 비대면거래는 미안할 일도, 죄송할 일도 아니게 되었다. 구매자 아무개씨도 편하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는 물건을 찾으러 갈 수 있으니까.
아무개씨를 직접 만나 물건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당근이세요?’라고 암호를 대고, 물건을 건네받고 각자 갈 길로 간다. 거래대금은 이미 당근페이로 송금한 상태라 더 머물 일도 없다. 같이 마주하는 시간이 10초가 채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영화에서 본 듯한 마약상의 거래장면이 떠오른다. 여러 인파 속에 서로 스쳐 지나치면서 마약 밀거래를 하던 장면이랑 닮았다.
아주 가끔, 사담을 주고받을 때가 있다. 보통 구매자 아무개씨가 물건과 얽힌 사연, 필요한 이유를 나누면서 시작된다. 3학년 된 손녀딸이 할아버지 집에 자주 놀러 왔으면 하는 마음에 장난감을 산다는 얘기, 치매 걸린 노모가 따뜻하게 지내도록 전기난로를 구매하면서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 복지관에서 반찬 봉사를 하는데 취향 저격인 빨간 체크무늬 앞치마를 구했다며 좋아하시는 아주머니. 그런 얘기가 오고 가면, 구매자 아무개씨는 따뜻한 마음씨의 어르신으로 입력된다.
비대면이 익숙한 세상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듯하다. 옷깃이 스칠 일이 줄어드니, 새로운 인연이 생기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다. 배달 음식, 택배 물건 문 앞에 얌전히 놓여있다. 24시간 열려있는 무인가게. 키오스크에서 원하는 메뉴를 고르고 계산하면 끝이다. 직원과 말 섞을 일이 없다. 길거리에서 길을 묻던 사람도 찾기 어렵다. 핸드폰 만지작거리면 뚝딱 답이 바로 나오는데 거추장스럽게 ‘저기요’라고 부를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도를 아십니까’ 전도자들도 요즘 보기 어려워졌다.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 세운 가판대 양옆을 지키는 사람이 간혹 보일 정도다.
비대면 시대에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을까?
확실한건, 아무개씨 비대면거래를 좋아한다는 거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효율성을 따지면 이만한 게 없다. 나름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타인과 말을 섞지 않아도 되니 비대면이 훨씬 편하다. 오프라인 매장에 갈 때도 아무개 손님으로 입장하고 싶다. 옷가게에서는 과도하게 친절하고, 싹싹한 직원분은 부담스럽다. 혼자 편하게 보고 싶은데 방해받는 기분이다. 차라리 신입처럼 멀뚱히 있다가 결제만 해줘도 좋겠다. 사람 키오스크처럼 말이다. 택시에서는 기사님이 대화 없이 목적지로만 이동해주면 바랄 게 없었고.
가장 어색하면서도 힘든 장소는 미용실이었다. 묵묵부답 있기가 그랬다. 결국,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무개 미용사와 아무개 손님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아무개씨가 아는 사람이 되니 불편할 줄 알았는데 되려 편해졌다. 경계심을 내려놓고 사귐을 이어가다 보니 그 사람이 보이고, 좋아졌다. 이전 비대면거래에서 빠져있던 사람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비대면에서 대면거래로 넘어가는 중이다. 아직은 양다리다.
‘물건만 사면 됐지!’에서
‘이왕이면, 겸사겸사’ 물건을 주고받으며 사람도 사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