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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미 Aug 12. 2024

참말로 필요하신가요?

은혜 모르는 당근이

“진짜 안 먹을 거지? 라면 한 개만 끓인다.”

진짜였다. 배가 고프지 않았고, 라면 생각도 없었다. 

거참 희한하다. 

내 눈에 꼬들꼬들한 면발이 보이고, 내 코에 MSG를 팍팍 뿌린 국물 향이 닿으면 온 감각이 깨어나는 듯하다. 급 허기가 몰려오고, 어느새 ‘한 젓가락만’ 하고 있다. 확실히 나는 감각이 생각보다 드센 거 같다. 

    

당근마켓에서도 비슷하다.

‘이게 필요할까?’ ‘아니, 뭐하게.’ 

혼자 묻고, 답해도 결론은 같다. 진짜다. 집에 둘 만한 자리도 없다. 근데도 물건을 보면 말이 달라진다. 잠자고 있던 물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특히 ‘무료 드림’이나 ‘무료 나눔’ 꼬리표를 달고 나온 물건을 접하면 물욕이 솟구쳐 오른다. 그럴듯한 물건 사진에 조바심이 생긴다. 필요하고 말고는 나중에 확인해도 늦지 않다. 얼른 우리 집에 들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게 받은 물건 중 하나가 ‘삼성 공기청정기’였다. 코로나 시기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확진자 수에 온 관심이 쏠려 미세먼지 수치는 뒷전이었다. 하긴, 코로나 이전에 중국발 미세먼지가 하늘을 뿌옇게 뒤덮을 때도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가끔가다 목이 칼칼해지면 소금물로 입을 헹구는 정도로 예민하게 굴지 않았다.     


누가 공기청정기를 준단다. 공짜란 말에 혹했고, 필요한 이유를 애써 찾아가며 ‘받는 사람’으로 신청했다.   

   

‘뭐에 쓰는 물건인고?’

‘공기청정기’도 우리 집에 처음 입성하는 물건이었다. (당근마켓 덕분에 신문물을 자주 접했다) 어떤 물건인지 궁금했다. 한 손으로 가뿐하게 들 수 있는 무게로 이동이 쉽고, 산뜻한 연둣빛 사각 프레임에 벌써 공기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깨끗한 상태로 보관한 걸 보면 많이 쓴 거 같지도 않다. 이런 물건을 거저 주시는 분을 내 머리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더 받겠다는 사람이 어찌 조건 없는 나눔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임금님께 하사받는 마음으로 청정기를 집으로 영접했다. 

    

공기청정기는 선풍기만큼 조작이 간편했다. 설명서도 필요 없었다. 그냥 앞 상판에 동그란 버튼을 눌러서 원하는 모드를 선택하면 끝이다. ‘웅웅웅’ 기계가 일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사뭇 다르다고 느꼈던 건 기분 탓이겠지. 깊은 복식호흡으로 최대한 공기를 뱃속까지 채워 넣었다. 이 기계에는 알림 램프가 없다. 우리 집 공기가 얼마나 더러운지 빨간 불로 경고하지 않고, 공기청정 작업을 얼마나 착실히 했는지 초록 불로 결과보고 하지 않는다. ‘좋아졌겠거니.’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실제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낯선 물건을 맞이하고서는 ‘웅웅웅’ 세 번 정도 틀었을까?      


지금은 전신 거울 뒤쪽에 다소곳이 앉아있다. 둥지를 튼 것처럼 붙박이다. 가끔 청소기 돌릴 때 들었다 놨다 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정도다.     


‘공기청정기’를 나눔으로 주신 분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반가워하지는 않을 거다. 씁쓸할지도 모르겠다. ‘내 그러라고 그런 게 아닌데.’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 따로 알리지 않을 거다.^^    

 

물건을 ‘보내는 이’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겠지.
빨리 정리, 처분하고 싶어서 내놓은 사람.
그저 다른 사람과 노나 쓰고 싶어서 내놓은 사람.
생활 쓰레기 처리비용을 줄이고자 ‘나눔’이라고 내어놓은 사람도 있다.     
상황이나 이유가 어떻든, ‘보내는 이’의 마음은 비슷할 거다. 
필요한 사람이 요긴하게 써줬으면 하는 마음 그게 본심이다.      


좋은 마음에 시작한 나눔도 나처럼 ‘받는 이’가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면 

마음은 쏙 빼고 물건만 받게 된다.


쓸데없이 물건에 욕심을 부리니 ‘나누는 이’의 마음은 놓치고, 물건만 보이는 거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말로는 감사하다고 하는데 나는 ‘나눔’에 진심 고마워하지 않는 듯하다. 치열한 경쟁을 뚫지 못하고 ‘받는 이’가 되지 못할 때는 다 잡은 고기를 놓친 듯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은혜를 은혜로 받지도 못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눔으로 받았던 공기청정기. 이제는 진짜 ‘받는 이’를 찾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재 나눔으로 당근마켓에 올려보고자 한다. ‘보내는 이’의 본심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도록, 정말 필요한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물건을 건네면서 ‘원 나눔자’의 마음이 ‘받은 이’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당근마켓에서 이상해씨를 본 적이 있다. 직접 뵙진 않았지만, 얼굴 사진에 이름 석 자가 찍혀서 아무개씨는 아니었다. 이름이나 얼굴 공개보다 더 이상했던 건 나눔 퍼레이드였다. 일주일 정도 매일 나눔 물건이 줄기차게 올라왔다. 플리마켓을 해도 될 정도로 스카프, 화장품, 먹거리 등 다양한 종류에 전부 사용하지 않은 새 물건이었다. 사진과 더불어 이 물건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물건이 얽힌 사연을 맛깔나게 써 두셔서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장소에서 나눔을 진행한다고 하셨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 따뜻한 분이셨다. 나눔을 받은 이가 감사하다고 후기 글을 남기면 댓글도 성의껏 달아주셨다. 그중에 하나를 캡쳐해보았다. '보내는 이'의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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