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본심찾기
두 명 중 하나가 붙으면 나머지 하나는 자동 탈락이다. 나는 나머지 한 명이 되었다. 일생일대 수능은 아니고, 2주 단기직에서 떨어진 거라 하늘이 무너지진 않았다. 근데 기분이 묘하다.
2등으로 밀려나서 아쉽거나 억울한 건 아니다.
낮은 경쟁률조차 뚫지 못한 나의 변변찮음이 못마땅한 것도 아니다.
나를 받아주지 않는 이들에게 씩씩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당황스러웠다.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내가 될 줄 알았으니까. 근데 아니라고? 이게 뭔가 싶다.
김칫국 두 사발을 벌컥 들이키게 한 내 ‘똥촉’이 야속할 따름이다. 눈치가 없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틀린 셈이다.
크나큰 착각으로 밝혀진 ‘똥촉’에도 이유는 있었다.
이유 하나, 나름 경력직. 땡땡 중학교에서 협력 강사를 구한다는 공고문을 봤다. 2주간만 반짝 일하면 된단다. 이전 관련 경력이 있어 가산점이 될 거로 생각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계획서와 자소서를 진솔하게 작성했다.
이유 둘, 훈훈했던 면접 분위기. 목요일 면접이 잡혔다. 면접은 오랜만이지만 떨리진 않았다. 2주 단기직이라 부담이 없어서 그랬나 보다. 단기간 대체 강사를 찾는 분위기라서 면접도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압박 면접에서 받을만한, 대답하기 힘든 질문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질문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게 맞겠다. 선생님 두 분과 15분 남짓 담소 나누듯 이어졌다. 이력서에 적힌 주소지를 확인하며 출퇴근 시간을 가늠하고, 예전 근무처와 근무 이력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지원자도 많아 보이진 않았다. 나 말고 한 명 더 보고 결정한다는 말을 들었다. 선임으로 보이는 선생님은 카모마일 차도 타 주시고, 선물로 뉴베리 수상작 원서 한 권을 건네주셨다. 내년도에 디지털 교과서 도입 예정이라 협력 강사가 필요할 거라는 쏠쏠한 정보도 알려주셨다. 그렇게 정다운분위기로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내정자처럼 이미 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눈치가 꽝인 나 같은 사람은
포커페이스 이면을 읽을 수가 없다.
언어영역에서도 추론적 사고 문제를 풀지 못한다.
예의상 하는 행동과 말의 속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내 좋을 대로 판단해버리곤 해서 김칫국을 자주 마시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면접관 선생님들은 나를 받아줄 듯 보였는데 본심이 그렇지 않았다는 걸 결과가 나온 뒤에야 알게 되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결과를 듣고, 그때 면접 상황을 되돌아보니 달리 보이는 점이 있었다.
내게 딱히 관심이 없어서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고 면접을 마무리 지은 건 아니었을까?
이제야 고개를 끄덕하게 된다. 근데 난 왜 그린 라이트로만 생각했을까?
목요일에 면접을 보고, 다음 날 받은 문자다.
안녕하세요, 땡땡 중학교 기초학력 협력 강사 채용 담당자입니다. 채용 결과를 안내해드립니다. 아쉽게 이번 영어과 기초학력 협력 강사로 지원자님을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간 내어 지원해주시고 면접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게'에 시선이 머물렀다. 진짜 아쉬웠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는 안다.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게 깍듯이 배려해서 해 주신 말씀이란 걸 말이다. 눈치가 없어서 찐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앞서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예의상 하는 행동에 내 식으로 의미 부여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로만 봐도 ‘똥촉’ 때문에 실망하는 일은 줄어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