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는 말로 천 냥 빚 못 갚는다.
별걸 다 시키시네요.
생각 없이 말이 먼저 나와버렸다. 순간 아차 했다. 되돌리기 버튼은 없다. 웃기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웃을 수도 없는 말이다. 상대를 무안하게 할 뿐이었다.
대여섯 명쯤 모여 강의를 듣는 자리였다. 강사님이 강의안을 미리 준비해서 나눠주셨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본문 앞부분에 인용된 '시'를 읽어달라고 부탁하셨다. 강사님이 나를 콕 찍어 지목하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첫 타자가 되어서 당황스러웠던 걸까. 부끄러운 마음이 이런 식으로 표현될 줄이야.
"별걸 다 시키시네요."
읽기 싫은 게 아니었다. 부정적인 반감도 전혀 없었는데 말이 완전히 다르게 나갔다. 필터링 없이 엎질러진 말에 강사님은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말을 내뱉고는 순간 정신이 들고,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수습하듯 바삐 해당 본문을 읽어내려갔다. 다른 몇 분이 눈치를 채고, 억지로 웃어주셔서 다행히도 싸해질 뻔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강의는 계속되었다.
그저 강사님 말씀대로 맞춰 읽으면 될 걸. 나는 왜 굳이 맘에도 없는 말을 했을까? 후회가 켜켜이 쌓인다. 마음이 불편하다. 강사님께 제대로 '죄송하다'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다시 얘기를 꺼낼 용기가 안 났고, 다른 실수를 할까 봐 겁나기도 했다. 생각 없이 던져진 가벼운 말 한마디가 무게감 없이 지나갔기를 바랄 뿐이다.
유창함은커녕 상황에 맞지 않는 말로 분위기를 냉랭하게 식혀버린다. 의도치 않게 틱틱거리거나, 은근 다른 사람을 까는 말을 뱉기도 한다. 초면에 어색하면 뚝딱거림이 더 심해지기도 하고.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하나?
일단은 멈춤이 필요할 듯하다. 지금 상황에선 그냥 버퍼링이 걸리거나 침묵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각하고 말하는 연습이 시급하다. 입에서 바로 나오는 말은 위험하다. 수습이 안 된다. 머리에서 입력하고, 입으로 출력하는 출입구를 구분해야겠다.